[옥천의 여성] 어릴 땐 글 쓰는게 취미, 어른 되어선 서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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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여성] 어릴 땐 글 쓰는게 취미, 어른 되어선 서예 작가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5.2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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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교실 ‘심향회’ 회장 김춘호 씨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김춘호 씨.
“아직 배울 게 많다”는 김춘호 씨.

“나는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서예 교실 밖에 안가. 너희들도 서예 교실이 있으면 가봐.”
어릴 땐 글쓰기를 좋아했던 소녀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서예 작가가 된 김춘호(여, 68) 씨. 공무원의 아내로 내조를 하며 시아버님 시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살며 충청북도 ‘내조여왕’ 상을 받은 바가 있었다. 

고향은 옥천군 청산면, 어릴 땐 나무 밑에서 송충이 떨어지는 환경에서 공부했다. “옛날 시골 어른들은 땅을 샀으면 샀지, 여자들은 가르쳐 놓으면 도망간다고 남자들은 농사지으라고 많이 안 가르쳤다.”며 어려운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남편 덕분인지 내조를 잘하지는 못했는데 1988년에 ‘내조여왕’ 상을 받고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옥천지도소에서 생활개선 회원 중에 유일하게 효부로 시어머님 모시고 청주진흥청에 초청되었다. 어머님 시집올 때 가지고 오신 옷감으로 옥색 치마저고리의 한복을 한 벌 해 드려 입고 가셨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 

그때 그곳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셨는데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우리 시어머니가 텔레비전에 몇 년을 나오더라. 난 사실 효부는 아니고 그냥 열심히 살았다. 내가 볼 때 나는 그냥 기본을 한 정도다.

서예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잡념이 안 생기고 마음의 안정을 시켜준다. 옛날부터 서예 교실만 가면 그냥 좋았고 걱정이 없어진다. 여기서(대천리) 걸어서 여성회관까지 50분 정도 걸렸다. 한여름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결석 한번 안 하고 다녔다.

집에서는 살림하며 어른들 모시고 함께 살다 보니 손님들이 많이 왔다. 그래서 할 일이 많아 서예를 많이 못 했다. 어디 대회라도 나가게 되면 선생님께 체본을 받아 입이 부르트도록 날마다 쓰고 다시 쓰고 맹연습을 했다. 아직 서예는 배울 게 많다. 서예의 끈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생각이다.

‘심향회’는 어떤 곳인가

회원이 14명 되는 서예 교실로 서로가 얼마나 안고 도는지 모른다. 평거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체본을 주신다. 우리는 그 체본을 보고 열심히 연습한다. 서로 쓴 글씨를 붙여 놓고 보면서 ‘삐뚤어’, ‘이탈했네’, ‘가늘어’, ‘강약을 줘야 하는 거 아냐.’ 서로가 봐주면서 다시 쓰고 또 쓰면서 선생님이 주신 체본과 대조를 해서 ‘삐뚤어졌어’ 하면 고치고 서로가 이러면서 한다. 나 혼자는 못 한다. 나이 차이는 있어도 동료들이 친구로 협력이 잘 된다.

올해 남자 회원님 3분이 가입해 “여기는 가정적인 분위기다. 서로서로 형제간 마냥 엄청 안고 돈다”고 말하는데 너무 고맙더라. 

옥천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가 대회 나갈 때 열심히 연습할 수 있도록 여성회관에서 문 열어주는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서예는 어떤 보람이 있었는지

자식들이 손자들이 인정해주는 그게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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