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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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내빈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2.08.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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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두 번은 아니 어쩌면 수없이 많은 행사장을 찾게 된다. 그리고 행사가 크든 적든 그곳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내빈’이라는 존재들이 자리하기 마련이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본 행사가 시작되면 사회자는 으레 ‘내빈’ 소개를 한다. 오늘 행사에 이러이러한 내빈들이 참석했으니 내빈이 아닌 일반인(아랫것)들은 군소리 말고 그저 박수나 열심히 치라고 주문을 한다. 그리고 끝도 없이 ‘내빈’ 소개를 한다. 설상가상 축사니 격려사니 하는 아무도 듣지 않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들을 줄줄이 토해 내곤 한다. 자화자찬의 극치를 이룬다. 가히 짜증이 날 정도다. 행사 시간 절반 이상을 그들의 말 잔치로 소비해 버린다. 이쯤되면 본 행사를 즐기기도 전에 서서히 지쳐 간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하나 든다. 바로 ‘내빈’이라는 존재들이다. 사실 사회자가 소개하는 ‘내빈’이라는 작자들은 대부분 주민들의 투표로 당선된 선출직이거나 지역사회 단체장들이다. 즉, 지역주민(유권자)을 위해 봉사하고 지역발전을 위해 손 발이 닳도록 헌신하라고 뽑아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그들을 ‘내빈’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특별대우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분명 유권자들을 대신해 일을 하라고 뽑아 놓은 ‘심부름꾼’들이며 국민의 혈세로 생을 연명해 가는 아류((亞流)들이다. 그런 그들을 ‘내빈’이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그것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맨 앞자리나(이른바 상석) 정중앙에 앉히니.

진정한 ‘내빈’은 말없는 불특정다수의 유권자들이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선출직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내빈’이라 부르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하며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체화돼 왔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분명 그들이 천작(天爵)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국립국어원이 발행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내빈(來賓)’이라는 단어에 대해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내빈은 초청장만 안받았지 초대받은 유권자(주민)들이다. 그런 유권자들을 ‘그들(내빈)’은 무시하고 복종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자신들을 내빈이라 소개하면 당연히 사양하고 오히려 주민들을 소개하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건 아닐까. 그게 선출직들이 가져야 할 첫 번째 겸양의 미덕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깐 채로 잘도 고개를 숙이고 잘도 축사(격려사)를 건넨다. 참으로 뻔뻔하다.

그래서일까, 이달 25일부터 27일까지 옥천공설운동장 등에서 열리는 ‘제16회 충북도민체육대회’는 기존의 이러한 관행을 뒤엎고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 것이 바로 개막식 모습이다.

이날 개막식은 우선 휠체어 이용객과 임산부, 영유아, 노인 등 노약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키로 했다. 즉, 그동안 도지사나 국회의원과 같은 사람들이 앉던 자리를 이들 노약자들이 앉도록 배려한 것이다. 또, 선수단 입장도 다르게 진행된다. 2019년 괴산군 대회때까지만 해도 높은 본부석에 자리한 내빈을 행해 선수단이 고개를 들고 손을 흔들며 입장을 했으나 이번에는 정 반대로 선수단이 무대 위로 오르며 입장을 하면 이른바 내빈들은 운동장 바닥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아 선수단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쳐야 한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모습인가. 사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힘깨나 쓰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내빈 대접해 왔다. 그 결과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먼저 예우해 주고 갖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세월은 변하고 시대는 달라져 가고 있다. 아무리 힘이 세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다지 겁을 내거나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잘못을 하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고 당장에 해당 직을 사직하도록 만드는 그런 세상이 됐다. 그만큼 민도가 높아졌고 자기의식이 강해진 세상이 되었다.

이번 도민체전과 관련해 군민(특히 노약자)들을 ‘내빈’으로 생각하고 더 좋은 위치에서 경기를 관람토록 배려한 옥천군의 마음 씀씀이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선출직이니 뭐니 해서 대우만 받으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번 체전을 계기로 많은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확언컨대, 당신들은 분명 선거기간 동안 “이 한 몸 다 바쳐 유권자들의 머슴이 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던 심부름꾼들이다. 그런데 당선이라는 월계관을 쓰고 나자 은근히 유권자들로부터 대우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바로 그게 잘못됐다. 어디 머슴(선출직)이 주인(유권자)에게 대접을 받으려 한단 말인가, 어디 머슴이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선출직들은 대궐 잔치에 참예(參預)하여 봉작(封爵)을 받은 부인들(內賓)이 아닐진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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