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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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2.10.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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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미술관에 갔다. 여러 작품 중 눈을 끄는 작품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보았다. 많은 색색의 점을 찍어 그린 그림인데 좀 멀리서 보면 산과 강 그리고 논밭을 표현한 산수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개개의 점들은 그저 푸른색, 녹색, 갈색, 등의 점뿐이었다. 그들이 조화롭게 모이니 멋진 산수화가 됐다. 

음악회도 갔다.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각각의 악기들의 소리가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가을이라 입맛이 돈다. 아내가 고기를 사 오고 상추도 사 왔다. 거실 양쪽 창문을 열어 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상추 겉절이를 했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간장, 참기름을 살짝 넣는다. 구운 고기 한 점과 상추 겉절이를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파, 마늘, 고춧가루 개개는 맵고 아린데 함께 어울리니 침샘을 자극한다. 

김치도 그렇다. 개개의 맛은 별로인데 여러가지 양념이 어울려 우리 한국의 맛을 만들어 낸다. 서양 음식에 비해 우리 한국의 음식은 어울림의 맛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소리로 대표 되는 사물놀이도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개개의 소리는 단조롭지만 어울릴 때 세계인을 감동을 주는 어울림의 소리가 된다.

필자의 식견이 부족한 해석인지는 몰라도 ‘우리’라는 말이 서양의 ‘my’라는 말로 대치된다. 

‘우리 집’,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my house’, ‘my mother, father’로. 우리는 개개인이 어울리는 존재이고 서양은 개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다. 어울림은 ‘함께’이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 집, 우리 아빠’처럼  ‘우리=나’이다. 

요즘 초등학생과 청소년층의 대화를 들어 보면 ‘우리’보다는 ‘나=내’라는 말로, 또한 각 개개인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쓰는 것 같다. ‘우리 것’이 아닌 ‘아버지 것’, ‘어머니 것’으로 말을 하는 경우를 자주 듣는다. ‘우리’를 ‘나’로 사용한다 해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어울림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스포츠팀, 회사, 단체 등의 구호로 ‘함께’라는 말이 자주 들어간다. 참 좋은 말이다. ‘go together’라는 노래도 있으며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공연과 행사의 포스터에는 ‘우리 함께 가자’라는 문구가 들어가고,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 시에도 도로변에 ‘우리 함께 가자’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 건배사에도 ‘우리 함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참 좋은 일이다. ‘나’만이 아닌 ‘함께=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향상되니 좋다.

그런데 좀 아쉬움이 있다. ‘우리 함께’라는 아름다운 어울림과는 거리가 멀고 서로 언성만 높이는 곳이 있다. 필자가 가 보지 못하기도 했고 뉴스에 나오지 않아서인지는 모르나 A당의 정책을 놓고 B당이, C당이 ‘우리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그분들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A당의 정책이 좀 미비하면 B당이나 C당에서 보완하여 함께 추진하면 안 될까? 그것이 진정한 협치가 아닐까?

공동체 의식 함양, 상생, 협동, 협치 등 무수한 말들이 과연 그 낱말 뜻대로 우리의 삶에서 어울리고 있는지 내 주변부터 살펴보고 반성하고 싶다. 사상 최악이라는 폭염으로 짜증나고 불쾌지수만 높아갔던 여름이 지났다. 이 만추(晩秋)에 부는 바람처럼 얽혔던 일들이 풀려 시원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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