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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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0)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2.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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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중봉의 기병(起兵)을 임금께 아뢰다

7월 27일, 조헌이 홍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청주로 향할 무렵이다. 이때 의주(義州) 행궁(行宮)에서는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이 보낸 유생 양산숙(梁山璹)과 곽현(郭賢)이 선조를 알현하고 있었다. 양산숙과 곽현은 김천일의 참모들이다. 수원부사(水原府使)를 지낸 김천일은 5월에 나주에서 기병하여 경기도지역으로 이동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김천일이 임금에게 의병 활동과 지역 내의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 그들을 의주로 보낸 것이다.

김천일을 비롯한 양산숙, 곽현 등은 모두 조헌과 교분이 있는 사이였다. 김천일은 의병을 이끌고 수원으로 이동할 때에 조헌과 만나 호서지역 의병에 관한 의견을 나눈 바도 있다. 양산숙은 우계 성혼(成渾)에게서 공부했으며 나주에 살았다. 그는 조헌이 함경도 길주 영동역에 유배되었을 때에 귀양에서 풀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양산숙과 곽현이 적진을 통과하며 낮에는 숨고 밤에는 길을 달려 어렵게 의주까지 왔다. 그때에 두 사람이 황해도(黃海道)와 평안도(平安道) 지방을 지나며 겪은 이야기이다. 

가는 곳마다 비록 촌부(村夫) 촌로(村老)라도 반드시 중봉 조헌의 소식을 묻는 것이었다. 조헌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대답을 들고는 원근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 조헌이 기병을 했으니 어찌 난을 평정하지 못한다고 걱정하랴’하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모두가 조헌(趙憲)은 응당 의병을 일으켜서 왜적을 토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등에 도끼를 메고 대궐에 들어가 상소를 한 충신인 조헌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는 서로 탄복하기를 이제 우리들은 살았다고 했다. 이는 양산숙과 곽현이 직접 보고 들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들은 중봉이 일세(一世)에 용납되지 못했는데도, 도리어 무식한 천예(賤隸)들 까지도 그를 잘 알고 있음은 무슨 일인가? 기이하고도 기이하다고 했다. 

양산숙과 곽현이 선조에게 “김천일(金千鎰)이 의병을 일으켜 전라병사(全羅兵使) 최원(崔遠)과 군사를 모아 수원에 당도했고, 조헌(趙憲)과 고경명(高敬命)도 의병을 일으켜서 적을 토벌하고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선조는 “내 부덕(不德)한 죄로 너희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천 리 길의 적중(敵中)을 뚫고 찾아왔으니 부끄러워 무슨 말을 하랴”라고 위로했다. 

또, 양산숙은 “김천일이 거느린 군병 중에 정용(精勇)된 자가 많기는 하나, 반 이상이 유생들로 오로지 충성과 의분으로 일어섰을 뿐 성패는 천운에 맡기고 있습니다”하고 아뢰니, 왕은 눈물을 흘리며 “충의가 물결치는 곳에 무슨 일인들 성공치 못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서 곽현이 아뢰기를 “신은 본래 조헌과 우의가 돈독했습니다. 거사한 뒤에 헌(憲)이 말하기를 근자에 천문(天文)을 보니, 우리나라는 멸망의 비운이 없으니 필경에는 왜적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가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기쁜 얼굴로 반문했다. 

“그것이 조헌의 말이냐?” 이에 곽현이 또, 아뢰기를 “기축년(己丑年, 선조 22년)에 조헌이 북도(北道)에 귀양 가 있으면서 역변(逆變, 정여립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고 또, 신미년(辛未年, 왜란 전년)에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바가 있으니 천문을 관찰한 것이 들어맞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자, 왕은 

 “그의 말이 이렇듯 부합되느냐?” 하며 매우 기뻐하였다.

선조는 양산숙에게 공조좌랑(工曹佐郎), 곽현에게는 사축서 사축(司畜署司畜)의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김천일을 판결사(判決事)로 삼아 창의사(倡義使)라 부르게 하고, 고경명도 초토사(招討使)라 칭하게 하였으며, 영호남 의병장들에게 교서(敎書)를 내렸다.

이 교서는 조헌에 전달되지 않았는데, 8월 15일에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에 제수하는 교서에서 선조는 “전에 내린 교서를 받아보았느냐?”라고 하문한 내용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보면 선조가 조헌의 기병을 양산숙 일행에게서 처음 듣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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