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죄를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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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죄를 졌습니다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4.05.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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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놀랐다. 그곳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란 말이 나오는 걸 보고 요즘 세상에 이렇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곳이(아니면 사람이) 있을까하고 눈을 의심했다. 누가 이렇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겠는가. 한데 정말 이런 곳이 있었다. 속초시가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벚꽃이 안 핍니다. 그래서 영랑호 벚꽃축제 두 번 합니다.”라고 전했단다. 올해 벚꽃개화가 늦어진 데 따라 축제 일자에 혼동이 생기며 연장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그게 죽을죄를 진 것이다. 올해 잦은 비와 꽃샘추위로 벚꽃 개화시기가 늦어졌단다. 해학(諧謔)이 느껴지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벚꽃개화가 늦어진 거야 하늘의 잘못이지 그게 왜 속초시의 잘못인가. 그럼에도 시민들에게 벚꽃축제 시기가 어긋나 죽을죄를 지었다고 고개 숙이는 속초시를 보고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한편으론 오랜만에 기분 좋게 신선한 웃음까지 터졌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주민들을 향해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고 시와 축제를 추진하는 쪽이 주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도 사회가 어수선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어서 이런 소리가 딴 세상의 소리처럼 들린다. 작은 것이라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속초시의 ‘죽을죄’를 전혀 죽을죄가 아니니 용기를 갖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 땜에 마음이 따뜻해진 우리들은 이미 용서하고 격려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당신들을 사면했다.   눈만 뜨면 서로 앙숙처럼 싸워대고 내가 잘났다고 난리를 치는 세태에 이렇게 겸손히 고개를 숙이는 마음,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세상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왜 이렇게 이런 쪽으로만 흘러갈까. 우리 사회에 ‘선생님’이 사라졌다. ‘사장님’과 나대는 ‘사공’들은 발에 차이는데 진정한 ‘선생님’이 없다. 모든 게 돈과 서로 헐뜯는 ‘정치’로 결부되는 세상이라서 그런가보다. 우직한 사람이 없고 ‘바보’가 없고 사회의 어느 구석에도 어른이 없다. 꾸짖을 수 있는 어르신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배우는 게 무엇일까. 아니 이미 아이들도 물이 들지 아니했을까. 학교 쪽 사정을 보면 안다. 하나나 둘만 낳은 아이들은 다루기 힘들고 삐끗하면 학부모까지 나서서 문제를 삼는다. 이젠 학교에도 선생님은 없고 귀한 집 자식들만 많다. 어떻게 훈육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을 것이다. 옛날처럼 체벌을 할 수도 없고 말도 함부로 했다간 당장 후유증이 생긴다.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귀하게만 자란 아이들은 어른을 노인충이나 꼴통으로 취급을 한다. 우리가, 사회가 내 자식들을 잘못 가르친 덕택이고 우리들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품격을 떨어트려 놓았기 때문이고 돈이 우선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속초, 참 좋은 곳이란 생각이다. 바다 없는 곳에 살다보니 항상 바다가 그립고 좋다. 여행을 가도 바다이고 그곳에 가면 젊은 시절마냥 가슴이 설렌다. 속초는 바닷가이고 환경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순수할 거란 생각이 든다. 옛날에 가보았지만 오래돼서 그런지 속초를 낯선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을 바꿔야겠다. 내가 오래전 군 생활 한 곳도 강원도인데 그곳 향수가 되살아난다. 이곳은 환경만 깨끗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을 것이다. 영악하지 않으면 좀 어떤가, 소란을 피우는 성격이 아니면 좀 어떤가. 우리에게 이런 곳과 이런 사람들이 한군데쯤이라도 있다는 게 위안이지 않은가. 이런 곳이 사람살기에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좋은 소식은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고 좋지 못한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밝은 소식만 발굴해서 세상 사람들 마음을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좋은 머리는 좋은데 써야한다. 남의기분도 살피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세상엔 우직하지만 남의 마음까지도 밝게 하고 여러 사람들 마음까지도 맑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속초가 있어서 다행이다. 동해바다의 맑은 바람만큼이나 여러 사람 기분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말 들어보기가 마른하늘 천둥소리 듣기보다 어려운 세상에 속초시가 시원한 청량제가 돼주어서 너무 고맙다. 모처럼 기분 좋게 웃고 오랜만에 마음이 가볍다.
(이글은 벚꽃이 피고 곳곳에 벚꽃축제가 열리던 시기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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