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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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4.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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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무어의 삶

지난달 24일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94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을 했다.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기업가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나 무어는 달랐다. 그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받고 있는 이유는 세상의 모래알같이 많은 기업가 중에서도 그가 남긴 족적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회사 운영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들과 사표를 내고 항공 재벌로 알려진 셔먼 페어차일드의 후원을 받아 ‘페어차일드 반도체’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다. 이른바 ‘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 사건이 그것이다.

회사를 차린 무어와 동료들은 당시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던 저마늄(게르마늄) 대신 실리콘(규소) 트랜지스터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실리콘 밸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들의 배신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야망과 추진력을 가진 젊은 창업자 세대의 탄생이자 모범이 됐다”고 극찬했다.

이후로도 무어의 발걸음은 광폭적으로 진행됐다. 1971년 세계 첫 상업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인텔 4004’를 출시했고 곧이어 후속 작품으로 ‘인텔 8088’을 IBM PC에 장착하면서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가 됐다. 그리고 1997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무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선활동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인 인텔 주식 1억 7,500만 주를 기부해 ‘고든 앤드 베티 무어 재단’을 만들어 과학 발전과 환경운동에 지원했다. 결국 무어는 자신의 재산 가운데 무려 51억 달러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우리 돈으로 치면 6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어의 행동철학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무어가 생전에 가족과 직원들을 먹이고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제품을 사주는 소비자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퇴 후 봉사활동과 함께 6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스스럼없이 사회에 환원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물론 무어처럼 세계적인 기업도 없을뿐더러 그만한 배짱도 없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돈 많은 무어라 해도 어찌 아깝지 않았겠는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벌인 지난날의 고통과 눈물들이 왜 기억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무어는 달랐다. 나(회사)의 존재 기저는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늘 기억에 두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도움으로 잘 먹고 잘살았으니, 이제는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게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마땅한 도리하는 사실을 무어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옥천이라는 작은 지역사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살이에는 무어나 우리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무어가 6조 원을 사회에 베풀었다면 우리는 흉내라도 내는 게 맞지 않을까. 무어가 생각한 것처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은 자신의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가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그게 그다지 어려운 것만도 아니리라 본다.

내 가게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있기에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며 내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가 있기에 내일을 꿈꾸며 사는 것 아니겠는가.

뉴욕타임스는 강조했다. “무어는 맞춤 양복보다는 헐렁한 셔츠를 즐겨 입었으며 쇼핑이나 소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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