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복위운동 만고충신 김문기 선생, 맏아들 지극효성 의절신 김현석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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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운동 만고충신 김문기 선생, 맏아들 지극효성 의절신 김현석 군수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3.05.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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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세종 2년(1420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 효자동에서 사육신 충의공 김문기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자는 태초(太初), 호는 여병재(如甁齋)이다. 김녕 김씨(金寧金氏)의 김시흥(金時興) 시조는 경순왕의 7대손이라 한다. 

효성지극, 영월군수 청백한 목민관
거창현감 때 사창제도로 백성구제

일찍이 경상도 거창 현감과 양지 현감을 거쳐 영월 군수 등을 지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고 치밀하며 마음이 강하고  정직하며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어디를 가나 백성을 사랑하고 덕으로써 고을을 다스리며 학문과 농사를 장려하는 청백한 목민관이었다.

특히 거창 현감으로 부임하여서는 유림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고 환곡을 저장해 두었던 사창(社倉)제도를 실시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으며 또 영월 군수로 재직할 때는 만사 공무 처리를 청백하고 떳떳하며 분명한 행정 처리를 했고 향약을 권장하여 백성들의 상부상조의 기틀을 만드는 한편 효자와 열녀를 찾아내서 표창하는 등 좋은 군정을 베풀어서 거창에서는 공덕을 칭송하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주었고 영월에는 청렴하고 덕행을 칭송하는 ‘청덕비(淸德碑)’를 백성들이 세웠다.

단종복위운동 실패 부친 함께, 36세 순절

아버지 김문기 대감께서 1456년(세조 2년)에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를 베고 단종을 복위 시키려는 거사에 앞장섰다가 탄로되어 처형되자 김현석도 36세의 젊은 나이에 함께 순절하였다.

이때 관원이 “아버지의 죄로 너까지 죽게 되니 원통하지 않느냐” 하니 “아버지(사육신 김문기)가 의(義)를 위하여 돌아가시는데 내 그 자식으로서 어찌 구차하게 남아 살겠는가?” 하였다 하니 그 충효(忠孝)는 하늘에 통하고 해와 같이 밝았다.

동학사 숙모전 등 배향, 거창에 사적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동학사 숙모전과 영월 장릉 배식단, 시흥시 수암면 화정리 오정각(五旌閣), 경북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 덕양서원 등 전국 8곳의 서원과 사우에 위패를 모셔 배향되었다. 경남 거창에는 그의 공적과 행장을 새겨 넣은 사적비가 있다.

왕명, 부조묘와 5대 걸쳐 정려 세워라
 
후에 의절신 김현석(金玄錫)은 정2품 자헌대부 이조판서 등의 증직과 부조묘 및 정려문을 세우도록 왕명이 내려졌다. 고종 때인 1870년(고종 7년) 김문기 선생 이하 5대손까지 정려(旌閭)하라는 왕명이 내렸다.

 이에 따라 김문기 선생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 여명재 김현석(金玄錫)과 손자 김충주, 증손자 김경남, 현손 김약전의 이충삼효오대(二忠三孝五代)를 정려하라는 고종의 왕명을 내리다.
 
조부 김관 이조판서
증조부 김순 고려말 호조판서

 아버지 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의 묘소는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사육신공원에 있으며 이조판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할아버지 김관(金觀)과 할머니 정경부인 옥천 육씨(沃川陸氏) 묘소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 위치한다. 그리고 증조부 김순(金順, 1341~1376년, 우왕 2년) 문과 급제, 호조판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을 지냈고 묘소는 심천 옥계리폭포 윗마을인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마곡리 서재분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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