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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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4)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5.1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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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금산성 공격을 준비하는 중봉의병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오곡이 무르익은 계절에 추석은 모든 백성들에게 즐거운 명절이다. 그러나 전 국토가 왜적에 짓밟히고, 임금은 의주(義州) 변방으로 파천했고,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있다. 그나마 보전되어 있는 곳은 호남과 호서의 일부였다. 한창 추수를 거둘 이 시기에 조선의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마저 적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올해 농사지은 곡식은 모두 왜적의 군량이 될 것이며, 우리 백성들은 굶주려야 할 것이고 또, 전쟁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호남의 방어는 그만큼 시급하고 긴요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조헌은 한시도 머뭇거리거나 자신의 안위를 돌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금산성을 점령하고 있는 왜적의 전투력과 위세로 보아서 중봉의병만으로 대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조헌이 모를 리가 없다. 

왜적은 지난번 청주전투에서 중봉의병에 패한 원한으로 이를 갈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성리학을 숭상하는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나서 많은 책을 읽은 그에게 충절(忠節)과 의리(義理)는 정신적 기반이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그의 성품은 무도한 왜적의 만행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다행히 전라도 관군과 협공을 약속했고, 의승장 영규도 군사를 거느리고 참전할 뜻을 전해왔다. 

이제 군사를 추슬러 금산으로 진격할 일만 남았다. 금산의 왜적을 토벌하고자 하는 그의 전투의지는 확고했고, 성패는 오로지 하늘에 맡겨야 할 일이다.

 다만, 홀로 남겨질 계모가 걱정이 되었다. 그는 출정에 앞서 아들 완기(完基)를 불렀다. 23살인 그는 외모와 기질까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 아버지는 아들 완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 형제들 가운데 큰일을 감당할 만한 놈은 완도(完堵)뿐인데, 전날에 청주싸움의 첩서(捷書)를 가지고 용만 행재소(龍彎行在所, 의주 행궁)로 가서 돌아올 기약이 묘연하고, 또 부자가 함께 죽으면 네 할머니는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그러니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봉양하거라.”라고 아들 완기에게 계모 봉양을 당부하며 출전을 만류하였다. 

이에 완기가 울며 말하기를

 “아버지는 충신이 되는데, 아들은 충신의 아들 노릇도 못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라고 분부를 따를 수 없다며 끝내 아버지를 따라서 출정하였다.

8월 15일, 조정에서 선조 임금이 조헌에게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에 제수하는 교지를 내린다. 

이때에 선조는 조헌이 청주성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보고 받지 못했다. 청주성 전투가 끝나고 청주파적후장계(淸州破敵後狀啓)와 기병후소(起兵後疏)를 작성하여 전승업(全承業), 곽현(郭賢)과 아들 완도(完堵)를 의주 행궁으로 출발시켰으나 아직 행궁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서의 내용에서도 조헌의 승전소식을 까마득히 모르고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헌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선조에게 조헌은 끊임없이 아픈 곳을 건드리는 불편하고 미운 존재였다. 일찍이 그가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로 있을 때에는 불공에 쓸 향을 올리라는 인순황후의 명을 거절하고 논향축소(論香祝疏)로 삭직 되었고, 논시폐소(論時弊疏)를 지부상소(持斧上疏)한 일로 인하여 함경도 길주로 유배를 보내기도 하였다.  임금이 직접 조헌의 상소를 불사르기도 하였으며,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이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는 다섯 번에 걸친 상소를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선조는 조헌을 요괴(妖怪)라고 내쳤고 대신들은 그를 미친놈이라고 했다. 

결국은 그가 예견하고 상소한 대로 왜적이 침범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이때에 조헌은 임금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일으키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에 선조가 봉상시첨정에 제수한다는 교서를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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