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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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0)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18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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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도 속상해 울면서 정말 우유 먹이기 전쟁 같았다.

너 역시 형처럼 백일동안 밤과 낮을 바꾸어, 밤에는 안 자고 울고 낮에는 둥글려도 어찌해도 곯아떨어져서 자고. 수술로 몸이 성하지 못한 엄마는 밤에 너를 안고 달래줄 수가 없었다. 우는 너를 안고 밤늦게까지 서서 왔다 갔다 달래는 일은 아빠가 도맡아 하셨지. 아빠가 잠깐만이라도 앉기만 하면 울어대는 너를 안고 오랜 시간 서서 다니셨다. 장시간을 그냥 팔에 안고 다니면 허리가 휠까봐 걱정되어 종이 널빤지로 너를 받쳐 안고 조심스럽게 서서 왔다 갔다 애지중지하셨단다. 매일 밤 팔에 너를 안고 늦게까지 서서 달래는 일이 계속되자 드디어 아빠 팔에 이상이 생겨서 나중에는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밤만 되면 우는 너를 여전히 안고 다니셨지. 그러기를 백일동안…. 백일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너는 신통하게도 밤에 자는 효자가 되더구나.

그러면서 너는 정말로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로 잘 자라주었다. 뽀얀 피부에 서양 아이 같은 동그란 두상에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새까만 눈망울에 방글방글 웃는 얼굴…. 엄마 동창 모임에 가도 너는 예쁘다고 누가 언제 안아갔는지 모르게 서로 데리고 가버렸고, 백화점엘 가도 점포마다 아가씨들이 서로 안아가고 아빠 친구 모임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서양 아이보다 더 희고 잘생겼다고들 야단이었단다. 그러던 중 네가 두 돌이 되던 해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사에서 전국에서 예쁜 아기를 선발한다며 엄마에게 연락이 왔었지. 선발된 아이는 표지모델이 되었는데, 너를 표지모델로 내고 싶다는 것이었지. 엄마는 너의 귀여운 사진이 다른 아기들한테 기쁨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어 흔쾌히 승낙했단다. 너를 데리고 잡지사에서 지정 

한 사진관으로 가서 표지에 쓸 사진을 여러 컷 찍었지. 엄마는 네가 촬영하는 동안 산토끼, 나비야 노래를 불러주며 카메라를 보도록 계속 쇼 아닌 쇼를 했고 말이다. 드디어 「꿈나라」 잡지가 발간되어 보내온 책을 받아보니 책표지에 난 우리 아들이 얼마나 귀엽고 총명한 모습인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단다. 성격이 활달하고 친구가 너무 많아 키우기가 힘들었던 네 형과 달리 너는 말이 없고 조용한 한편 어릴 때부 터 유난히도 속이 깊었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던 영선이와 네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둘이 좋아하는 사이라며 반 친구들이 너와 영선이를 돌아가며 놀려 댔다지? 견디다 못해 영선이 는 아무 말 않고 울어버렸고, 너는 대답하지 않다가 반복되는 질문에 화가 나서 그러면 어쩔 건데?하고 대답한 일로 해프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엄마는 영선이 엄마한테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엄마는 내심 섭섭했다. 영선이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엄마한테 다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는 하지 않아 영선이 엄마에게 들어야 하나 하는 섭섭함에 너는 왜 엄마한테 일체 학교에서 생긴 일을 얘기도 안 하느냐고 물었지. 네 깊은 마음도 모르고….

“엄마한테 숨기려고 얘기 안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엄마한테 얘기하면 엄마는 아빠한테, 영선이 엄마한테 이야기하게 되고 자꾸 전해지다보면 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은 과장되어 영선이한테 내가 또 다른 잘못을 하게 되는 결과가 오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말을 안 한 거예요.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면 나중에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침묵이 금인 셈이지요.”

순간 너의 말을 듣고 엄마는 너무도 놀랐다. 어찌 이제 열 살 되는 너의 입에서 그렇게 상상하지 못한 어른스러운 말을 듣다니! 그리고 어린 너의 마음이 그렇게 깊을 수가 있다니! 엄마는 대뜸 물었지. “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명심보감에 있어요.”하며 바로 책꽂이에서 명심보감 책을 찾아 그 페이지를 바로 펴서 내미는 게 아니니?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사실 엄마는 너를 형과는 달리 그때까지도 매일 아침 네 방에 달려가 엉덩이 두드려주고 머리 쓰다듬어주고 이뻐만 해 주는 막내였다. 네 형한테는 바람도 크고 기대도 커서 엄마 아들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무엇이든 잘하는 아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너는 그냥 엄마 아들로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네게 욕심도 바람도 없음이 엄마도 신기했다. 공부를 잘해도 좋고 못해도 좋고, 숙제를 가끔 안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조금 실수를 해도 괜찮았다. 너는 엄마의 마스코트처럼 언제나 손잡고 데리고 다니고 싶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그냥 사랑스러웠다.
순진하고 착한, 온종일 책상에 앉아 책만 보는 책벌레, 네 별명이 책벌레였지. 역사, 지리, 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빠 책장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섭렵하는 너였지. 어릴 적부터 TV는 9시 뉴스에서 정치, 경제, 사회 뉴스만 끝나면 소파에서 일어나는 너를 보며 엄마는 늘 웃었지. 어쩜 어린 경훈이가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그리 관심이 많을까? 네 반 친구들이 “우리가 신문에서 스포츠면만 좋아서 보듯이, 경훈이는 정치, 사회면만 보는 애야.”라고 말하곤 했지. 너는 또래 친구들과 달랐다.

경훈아, 네가 두 돌이 지나 말을 잘하면서부터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여 ‘꼬마사또’라는 책을 통째로 외워 기막히게 구연동화를 잘했단다. 친가, 외가를 불문하고 가족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의 가장 인기 있는 시간은 네가 앞에 나가 동화구연을 하는 시간이었지. 하도 조그만 애기가 여러 목소리를 흉내 내며 어찌나 구연을 잘하는지 다들 손뼉을 치며 한바탕 난리가 나야 끝나곤 했단다. 엄마가 봐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성우 뺨치는 구연 솜씨였단다. 어찌 기특한 게 그뿐이겠니? 어릴 적부터 효심이 남달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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