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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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6)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5.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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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조헌에게 내린 선조의 교서(敎書)
 
 명나라 원군이 계속 답지(遝至)하고 백신(百神)이 크게 쫒으며 음우(陰佑)하고 철마(鐵馬)가 대정(大定) · 청천(淸川)에 뻗어있고, 가함(舸艦)이 산동(山東)과 강절(江浙)에 연이어 있으며 미처 날뛰던 도적놈들의 쌓인 악독(惡毒)에 하늘도 놈들의 목을 베는데 가담하였고 우리나라의 의병들이 경기(京畿), 황해(黃海) 지방에 많이 있으면서 서로가 계속하여 왜적의 목을 베어 승리를 알리는 소식이 끊이지 않으며 사람마다 대의를 발분(發憤)하여 적개(賊愾)의 살기가 등등하니 이것은 실로 국가 중흥의 기회라. 너 헌(憲)은 정성과 충의에 더욱 힘써 게으름이 없게 하라. 인(仁)으로 외로운 무리들을 규합하고 의(義)로 군사들의 용맹을 고무하며 기회를 살펴 진격하여 만전의 승리를 획득한다면 그 위대하지 않겠는가?

 본도(本道)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사망한 장지현(張智賢) 등 이하, 몸을 던져 왜적을 토멸하던 승(僧) 처일(處一)과 정억만(鄭億萬) 같은 무리는 모두 은상(恩賞)을 가하였으니 너는 내 뜻을 돈독하게 일깨워 기묘한 계책을 많이 써서 혹은 후미 공격하며 밤에 기습을 하여 한 척의 수레도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여 일로(一路)를 깨끗하게 소탕하고 남(南)으로 오는 군대와 협조하여 도성에 진격하여 조종조(祖宗朝) 능침(陵寢)의 송백(松柏)이 뿌리가 뽑히지 않고 난리에 흩어져 숨은 노인이나 어린것이 미처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오늘의 으뜸가는 공이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는가?    

 작록(爵祿)과 상훈(賞勳)은 내 손에 있으니 산하(山河)를 가리키며 맹세하노라. 도성을 버리고 파월(播越)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왜적을 무찌르고 회복하는데 이르지 못하였으니 드높은 가을 하늘 찬 이슬 찬 서리에 종묘와 사직이 표령(飄零 신세가 딱하게 되어 떠돌아다님)한 것이 민망스럽고, 멀리 떨어진 국경지방 강기슭에 의지한 장전(帳殿 임금이 앉도록 임시로 꾸민 자리)이 으스스한 가을바람에 을씨년스럽다. 고향을 그리워함은 귀천이 다를 바 없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날로 마음 속에 간절하여 너희들이 달려와서 내가 탄 수레를 맞아 줄 것을 고개 들고 기다린다. 내 말은 궁진(窮盡 다하여 없어짐)하여 눈물이 먼저 떨어지니 너는 자량(自量 스스로 헤아림)하여 일을 하라.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아! 조정에는 부끄럽게도 묘책이 없어서 사태의 해결책을 초야에 묻힌 신하들에게 기대하고, 나라가 어지러워 흔들릴 때 충성된 신하를 알아볼 수 있다 하였으니 공은 오늘날과 같은 시기에 드러낼 수 있겠다. 그런 고로 이에 교시(敎示) 하노니 마땅히 알지어다. 

     만력(萬曆) 20년 팔 월 십오일                          

선조의 교서는 통절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이러한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조 임금은 

 “오직 내가 명석(明晳) 하지 못하여 사물을 통찰하고 말을 알아듣지를 능하게 하지 못하여 진언(進言)하는 사람이 혹 말하기를 국가의 위태로움이 아침·저녁으로 박두(迫頭)하였다고 하였으나 내 비록 그 말을 옳게 여기기는 하였으나 진실 되게 깨닫지 못하였다.”라는 대목에서 조헌이 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부터 올린 상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는

 “종묘와 사직이 폐허가 되고 백성들이 왜적에게 짓밟히고 으깨어짐에 이르게 하였으되 그것을 능히 방어하지 못하였으니 모든 잘못은 오로지 내게 있는지라, 비록 오늘날 천 백가지 신맛을 맛보되 내 죄업으로 받아들이고 감히 고생스러움을 말하지 못하니 내 정회(情懷)가 비감(悲感)하구나!“라는 자신의 비참한 심정을 교서에 그대로 적었다. 이 교서를 통해서 당시 나라가 처했던 위급한 상황과 선조 임금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헌은 이 교서가 도착하기 전에 금산전투가 시작되었고 칠백의사와 장렬하게 순절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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