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정도부터 엄마가 슈퍼마켓을 가려고 하면 너는 벌써 눈치 채고 언제나 앞서 따라나섰지. 엄마는 그 이유를 잘 알지. 그 당시는 물건 사면 배달해주는 제도가 없어 적든 많든 산 물건을 다 들고 와야 하는 시절이었지. 너는 엄마가 혼자 무거운 짐을 들고 올까 봐 걱정되어 늘 엄마와 동행했지. 물건을 사서 봉투에 담아 들고 나오면 너는 꼭 그 봉 투를 엄마 손에서 뺏어서 꼭 네가 들고 가겠다며, 엄마는 지갑이나 들고 가라고 등을 밀었다. 짐이 한 개든 서너 개든 상관없이 있는 숫자대로 다 네가 들겠다고 고집을 피웠지. 짐이 세 개나 네 개일 경우 두 손이 모자라면 고사리 같은 손가락마다 주렁주렁 비닐봉지를 끼워 들고 어떤 때는 한 손에 두세 개를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한참을 서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그럴 때 엄마가 네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린 네가 그렇게 짐을 몽땅 다 들고 가는 것을 보면, ‘팔러 가는 당나귀’가 된다, 어린 자식한테 무거운 짐을 몽땅 주고 엄마는 혼자 편하게 간다고 흉보면 어쩌니?” 하고 말했지.
그랬더니 너는 “욕할 테면 하라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무슨 상관이야?” 하는 말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지갑만 달랑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단다.
조금 가다 안쓰러운 마음에 “팔 아픈데 하나만 엄마 주고 나머지는 네가 다 들고 가.” 그래도 너는 괜찮다며 엄마가 짐을 들고 네게 주지 않으면 너는 그 자리에서 서서 움직이질 않았어. 어쩔 수 없이 네게 주면 너는 엄마가 힘들 것을 염려해서 절대 한 개도 짐을 나눠주는 법이 없었단다. 시장 봐온 것으로 반찬을 만들어주면 너는 “엄마 요즘 우리는 조선 시대 세종대왕보다 잘 먹고 사는 거예요. 세종대왕도 겨울에 우리처럼 상추와 이런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먹지 못했어요. 지금은 우리는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잘 먹고 잘살잖아요.” 하며 언제나 식탁 앞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남김없이 먹는 너를 보면, 엄마는 양식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네 마음이 얼마나 기특한지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단다. 밥그릇에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깨끗하게 먹는 것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물론 형도, 아빠도, 우리 식구 모두 밥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 것은 우리 집의 식습관이었지.
가정부 아주머니들이 너희같이 밥을 깨끗하게 먹는 아이들은 처음 본다고 하며 칭찬도 많이 했단다. 엄마는 형도 너도 어릴 때 밥 먹기 시작 할 때부터 “쌀은 농부 아저씨가 땀 흘려 지은 곡식을 아빠가 힘들여 번 돈으로 산 소중한 쌀로 정성껏 지은 밥이니까 한 톨도 남기거나 흘리거나 버려서는 안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금 세 살 난 네 조카 효원이도 마찬가지로 밥을 흘리면 다 주워 먹는단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겠지?
경훈아. 너는 어릴 적부터 우리 집 전기 스위치 끄기 담당이었다. 집 안팎으로 거실이나 아줌마 방, 베란다까지, 마지막 소등은 네가 맡아 전기를 절약했지. 네가 커서도 무더울 때 에어컨 켜고 있으라고 하면 ‘괜찮아요, 참을만해요’라며 우리 집 절전의 모범생이었다. 언젠가 네 오래 입은 점퍼 소매 끝이 다 닳아 떨어지기 직전이길래 점퍼를 사러 삼풍백화점엘 갔다. 내가 백화점에 간다니까 물론 너도 따라나섰다. 짐꾼 노릇을 해야 하니까. 그날은 슈퍼마켓이 아닌 3층 아동복매장으로 올라갔더니 네가 묻더구나.
“엄마, 여기에 왜 왔어요?”
“네 점퍼가 이젠 작고 소매가 다 떨어져 가서 하나 사려고 해.”
그랬더니 괜찮다며 안 사겠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엄마는 네 손을 꽉 잡고 아동복매장으로 들어갔다. 아가씨 둘이 있다가 너를 보더니 “아이구, 너무 예쁘게 생겼구나.” 하고 반겼다.
내가 너에게 맞을 윗옷을 하나 달라고 했더니, 네가 그 언니 앞을 막아서면서 ‘제 옷이 아직은 입을만해요, 괜찮아요’ 하면서 가게 문을 나가려 해서 엄마가 야단을 쳤다. ‘쓸 데없는 고집 좀 피우지 말라’며 너와 옥신각신하는 것을 본 그 언니는 “요즘 애들이 옷을 더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은 봤어도 이렇게 사준대도 안 사겠다고 하는 아이는 처음 보네요.”라고 했었지.
네가 완강하게 안 사겠다고 해서 결국 그날은 옷을 사지 못하고 나왔다. 그뿐이냐? 양말이 떨어지면 너는 언제나 양말을 가져와서 기워달라고 했지. 엄마는 양말이 큰돈은 아니지만, 너의 절약하려는 마음이 갸륵해서 사실은 시간이 없고 귀찮아도 네 양말을 덧대서 꿰매주곤 했지. 뒤꿈치를 꿰매 신으면 실내화를 신을 때 양말이 보여 친구들이 흉볼 수 있다고 해도 너는 “무슨 상관이에요? 누가 제 뒤꿈치만 봐요?” 하면서 상관없이 떨어져 꿰매준 헌 양말을 신고 다녔지. 엄마는 어릴 때 근검, 절약하는 삶의 자세를 익히는 일은 너희가 앞으로 한평생 살아가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는데 기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는 일부러 너희가 보는 앞에서 헤진 양말을 예쁘게 꿰매서 신어보라고 했고, 무릎이 나간 긴 내의도 너희가 보이는 곳에 앉아 무릎 위로 잘라 반 내의로 만들어 입어보라고 하기도 했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너희에게 작은 물건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히 하는 마음이 키워지기를 바랐다. 그래서인지 너는 명품이라는 것은 아예 걸친 적이 없고, 고가 브랜드 운동화 한 켤레도 신어본 적이 없이 자란 보기 드문 검소한 아이였지. 엄마가 어쩌다 괜찮은 브랜드 운동화를 사다주면 너는 항상 “동대문에서 파는 운동화도 편하고 괜찮아요. 그냥 값이 싼 운동화를 사다주세요.” 하고는 값비싼 운동화는 아까워 신발장에 넣어두곤 했지. 엄마한테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없는 네가 때로는 안쓰럽기도 해서 용돈이라도 주고 싶어서 용돈을 주면 절대 받는 법이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