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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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8)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6.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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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연곤평과 와여평을 점령하라
  
 331고지 일대에 숙영지를 편성한 조헌은 의병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조치했다. 이때 정탐을 나간 임정식이 별장(別將) 이산겸(李山謙)을 안내해 왔다. 이산겸은 조헌의 스승 중에 한 분인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아들이다. 이산겸은 금산에서 왜적에게 패퇴하여 수백 명의 군사와 철수하는 중에 조헌 선생께서 의병을 이끌고 금산으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왜적이 을묘년(乙卯年) 호남지방에서의 패전과 청주전투에서의 패전을 복수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며, 지금 금산에 둔거(屯據)하고 있는 왜적은 모두 정예(精銳)일 뿐만 아니라 그 수효 또한 수만이나 됩니다. 어찌 정규군도 아닌 오합지중(烏合之衆)으로 이를 맞아 싸우려고 합니까. 마땅히 군세(軍勢)를 살펴서 적을 가벼이 상대하지 마십시오.”

 라고 진군을 말렸다. 그러나 이미 전라도 순찰사의 약속이 있었고, 조헌의 결심 또한 흔들리지 않았다. 

 조헌은 휘하 막료와 영규를 불러 이틀 후로 약속된 금산성 공격계획을 논의하였다. 내일 다시 행군을 시작해서 금산성 인근으로 진출해서 적정을 탐지하고 전투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지량리에 들어서면 유등천을 따라 남으로 행군하다가 곡남리 인근에서 금성산을 넘어 금산성(錦山城) 가까이 진출한 다음에 전라도 관군과 연락이 되면 적을 협공하려는 것이었다.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영규의 승병은 각각 분산하여 집결지를 점령하며, 중봉의병은 금성산 아래 연곤평(延昆坪) 부근에 진을 치고, 영규의 승병은 10리 정도 떨어진 와여평(瓦余坪, 왜뿔)에 진을 치도록 결정하였다. 

 8월 17일, 조헌은 전라도 순찰사 권율(權慄)의 전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금산의 적을 공격하기로 약속한 날짜가 8월 18일로 내일이다. 그런데 전라도 관군의 진군(進軍)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관군의 위치는 의병이 금산성에 가까이 접근하는 시기의 판단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전라도 순찰사의 전갈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조헌이 공주에서 금산으로 출발한 것은 전라도 순찰사 권율과의 협공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믿고 부대를 진군시켰다.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은 애초부터 이 전투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고, 만약에 전라도 관군마저 오지 않는다면, 의병만으로는 상대적인 전투력에 격차가 너무 컸다. 그러나 조헌은 이미 약정한 공격 일자에 맞춰서 군사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의 기저에는 전라 순찰사 권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331고지 능선에서 부대가 지량리로 출발한 것은 오후가 되었을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을 이용하여 중봉의병은 금산성 10리 밖의 연곤평을 점령하고, 승병은 와여평(왜뿔)으로 전개하였다. 두 의병부대 간은 약 십 리 정도 거리가 있었고, 적이 있는 금산성으로부터 와여평은 약 5km 정도로 중봉의병이 위치한 연곤평보다는 약간 멀었다. 조헌의 이런 부대 배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에게 탐지되지 않도록 방비하되 군사의 규모가 크게 보이도록 기만하고, 적의 주의를 분산시킴과 아울러 위급 시에는 상호 지원이 가능하도록 운용할 계산이었을 것이다. 또한, 관군이 도착하고 협공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의병과 승병이 합세할 의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두 의병군(義兵軍)이 점령한 위치가 다르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중봉의병과 영규의 승병이 연곤평에서 함께 싸우다 모두 함께 전멸하였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엊그제가 8월 보름이었으나 흐린 날씨에 달빛은 구름에 가려 어둠은 짙었다. 

 한편, 협공을 약속한 전라도 관군은 기동하지 않고 있었다. 권율은 조헌에게 공격 날짜를 연기하자는 서신을 보냈고, 당연히 도착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권율의 서신은 조헌에게 도착하지 않았고, 연기하자는 소식을 모른 채 전투는 이미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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