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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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2)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6.08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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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커피 마시러 나가자’고 하면 나는 괜찮다고 하고 안가요. 삼촌 회사인데 이렇게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안 지키고 그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돼요.” 성실하고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네 성격에 엉덩이에 땀띠가 날 만큼 꼼짝 않고 앉아서 일만 했겠지? 28개월의 산업기능요원으로서 군 복무기간을 마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즈음 어느 날, 엄마가 퇴근하여 씻고 화장대에 앉았다. 그런데 화장대에 못 보던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무슨 책이지? 하고 책을 들어 책을 넘기다 보니 흰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엄마는 호기심에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는 금 24,823,000원 이 적혀있는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놀라서 네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뭐냐? 웬 수표니?”

“엄마 제가 28개월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해서 받은 월급을 그대로 적금을 들어 수표 한 장으로 찾았어요. 이 돈은 엄마가 가지시고 아빠도 조금만 드리세요. 책은 두 권이니까 한 권씩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엄마는 너를 낳은 후 이렇게 감격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전액을 적금해서 찾은 돈을 몽땅 엄마 쓰라고 수표 한 장으로 갖다 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효자 아들아! 이 돈은 엄마가 잘 두었다가 너 장가갈 때 밑천으로 보태줄게!

돈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구나. 네가 6학년 때 형이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 일이다. 어릴 때부터 6학년이 될 때까지 10여 년간 너는 동전이 생기면 꼬박꼬박 돼지저금통에 넣어 저금을 해왔단다. 그런데 고려대 합격증을 가지고 나가 문방구에 가서 코팅을 예쁘게 해서 형을 주면서 또 하나 형한테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주어 온 식구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지. 그것은 343,520원짜리 자기앞 수표였다. 

네가 한 번도 10여 년간 헐지 않고 모아둔 돼지저금통을 은행에 가져가서 수표 한 장으로 끊어온 선물이었다. 코팅한 합격증과 함께 내민 10여 년 모은 네 정성을 형한테 아낌없이 주는 순간이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이니 34만 원은 엄청 큰돈이었다. 엄마는 형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네 마음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그렇게 애지중지 오래 모아온 저금통을 몽땅 털어버린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왜 그렇게 몽땅 털어서 다 형을 주니? 그러지 않고 10만 원 정도만 선물해도 초등학교 학생인 너로서는 큰 선물을 하는 것인데 저금통에 조금이라도 남겨두지 않고….”

“아니에요, 형이 그동안 애써서 대학에 합격한 것이 얼마나 큰일이에요? 형한테 다 줘도 괜찮아요.” 형을 생각하는 네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엄마는 눈물이 글썽이고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어느 초등학생 어린 동생이 그런 깊은 생각으로 제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형을 위해 줄 수가 있을까? 네가 엄마보다도 더 깊고 더 넓은 마음을 가졌더구나. 에미보다 나은 자식을 가진 부모보다 행복한 부모가 또 있을까?

너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역사 공부를 좋아했고 역사에 유달리 큰 관심을 가졌기에 역사에 관한 한 누구도 너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너도 형의 뒤를 따라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네가 원해서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지. 엄마는 형 때와는 달리 네가 어떤 대학을 가든, 무슨 전공을 하든 관계없이 네가 원하는 것은 다 좋다고 생각했다. 그저 무엇을 해도 기특하고 이쁘기만 해서, 네가 다 성장해서도 너는 지금까지도 엄마에겐 그저 이쁜 막내아들일 뿐이다. 대학 가서도 술 한잔도 할 줄 모르는 너는 오로지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공부만 했지. 그러는 너에게 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니? 항상 친구를 한 다스로 몰고 다니는 네 형과 달리 너는 말수도 적은 조용한 성격으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는 오직 책이었다. 너는 책만 있으면 만사가 행복했다. 그런 덕분에 너는 졸업할 때까지 최우수 장학금을 받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지.

너는 졸업 후 군대 산업기능요원을 마치고 GRE 점수를 받아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지. 뉴욕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전공으로 20:1의 어려운 경쟁률을 이기고 합격해서 뉴욕대학교에서 수학하게 되었지. 그때 시애틀 워싱턴대학교에도 동시 합격했고, 워싱턴대학에서는 적극적으로 입학을 권유했지만, 고민 끝에 너는 NYU를 선택하여 뉴욕으로 떠나게 되었다. 엄마 마음은 처음 외지를 떠나보내는 경험이어서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네가 원하는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니 무사히 수학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NYU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하고 너는 떠났다. 물론 NYU는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대학 이름만큼이나 비쌌다. 뉴욕 중에서도 맨해튼에 있는 명문 뉴욕대학교 이름값을 톡톡히 할 만큼 그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너는 기숙사비와 밥값이 너무 비싸다며 마음이 썩 내켜 하지 않았으나 엄마는 라면 한 그릇도 끓여 먹어 본 적도 없는 네가 혼자 방을 얻어 자취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기숙사를 권유했었다. 그런데 기숙사 생활 1년 후 너는 엄마한테는 알리지도 않고 드디어 기숙사에서 나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고 알려왔다.

“엄마 기숙사에서 나와서 방을 얻었어요. 맨해튼의 할렘가 비슷한 곳인데 집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 방을 얻어 이사했어요.”

절대 돈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고 검소하게 사는 태도가 몸에 밴 네 모습을 보며 엄마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네가 내심 대견하면서도 먹는 것을 어떻게 해 먹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NYU에서도 너는 많은 교수와 학생들에게 특별한 학생이었다지? 클래스에서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은 네가 거의 도맡아 하고, 토론시간에도 토론의 1/3 정도는 네가 토론을 적극적으로 하고, 교수가 “경훈이는 모든 것을 잘 기억하는 메모리머신 같다.”고, 또 미국 학생은 “내가 미국인인데 한국인인 경훈이가 어떻게 나보다 미국의 역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혀를 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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