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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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문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3.06.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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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질 무렵 뜨거운 햇살을 피해 뒷동산을 오르며 산책을 한다. 

6월의 햇살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이 제법 짙은 녹색으로 푸르름을 더해간다. 밤꽃 향기도 짙어지고 솔방울도 파래져간다 인근 밭에는 고추도 매달리기 시작 했고 ...... .

산책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도대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이 과연 우리 주변 곳곳에 얼마나 발휘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천변, 등산로 입구 근처의 밭둑에 쉽게 보이는 “경고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천 둑이나 산비탈을 일구어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는 곳에 서 있는 경고문이나 안내문에는 한결같이 “00 법 00조”에 의거 ‘경작 행위 금지, 시설물 훼손 금지’ 등의 법조문과 이에 대한 처벌(실형이나 벌과금 부과)을 기재하고 있다. 또한, 기한을 정하여 원상 복구하지 않으면 행정기관 임의로 처리하겠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런데 2~3년이 지나도, 심지어는 4~5년이 지나도 경고판은 경고판대로, 농작물은 농작물대로 서로 경쟁하듯 서 있다. 달라 진 것은 경고판이 뽑혀 팽개쳐 있거나 훼손되어 볼품없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심하게는 4~50년 된 참나무가 베어져 있고, 나무 그늘이 농작물을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슬금슬금 나무 밑동에 톱질해 놓아 시름시름 말라 죽어 가게 한 곳도 있다. 

없는 살림에 약간의 농작물을 경작하여 먹고 살겠다는 주민들을 비방하고 싶지는 않다. 오죽하면 그런 곳을 찾아 몇 그루 고구마, 옥수수, 파, 마늘을 심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려되는 것은 그렇게 농작물을 심어 가꾸다 보니 그 고구마 줄기, 콩깍지대, 뽑힌 잡초 더미와 채소를 다듬은 쓰레기, 농업용 폐비닐, 각종 나뭇가지(지지대) 등이 주변 배수로에 쌓이고, 물길을 막아 큰비라도 오면 물이 넘쳐 주변 땅을 침식하게 되고, 또한 녹생토공법으로 토사 유출을 방지해 놓은 부분의 풀과 나무를 뽑아 밭으로 만들어 토사 유출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는 우려이다. 실제로 몇 년 전, 산비탈을 깎아 만든 경작지의 토사가 유출되어 대전 서구 오량 터널로 다량의 토사와 쓰레기가 휩쓸려 들어와 위험한 때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봄철에는 담배꽁초라도 버리면 산불로 번질 위험도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행정력의 약화이거나 결말이 없는 전시 효과적 행정이다. 우연한 기회에 경작하는 주민을 만났다. “아저씨, 여기 경고문이 있는데 이렇게 농사를 지어도 괜찮아요?”, “아니 뭐, 먹고 살겠다는데 누가 시비 걸어. 그리고 이딴 것, 세워 놓아도 세울 때 뿐여. 저거 봐. 저 판때기도 몇 년 됐잖어? 그 뒤도 계속 농사짓는데, 아무도(행정담당자) 안 와 봐. 그래서 그냥 짓는 겨.” 그저 경고판과 안내판만 세우는 것은 예산 낭비가 아닌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비한 비탈면과 둔덕은 그 또한 예산 낭비가 되는 것은 아닌지?

행정을 무시하는 주민들, 과연 그 책임은 위법을 한 주민들인가? 아니면 경고문만 세우는 행정기관인가? 국가의 질서는 법이 집행될 때 지켜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필자가 이해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의 사람들이 법에 저촉되어 재판을 받거나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것이다.

항상 큰 사고가 나면 “인재”라는 말을 한다. 미리 방비하면 될 것을 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일이다. 인재는 당장의 이기적 행태와 게으름, 그리고 규칙을 무시하는 불감증의 산물이다. 해마다 장마가 오면 수해가 일어난다. 미리 대비하고 처리해서 더 큰 화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자는 지도자를 구분하여 “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悔之 최고 지도자는 존재만 있는 자, 다음은 백성을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자,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자, 그리고 좋지 못한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자”라고 했다. 행정이 최고는 못되더라도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전처럼 “세워 놓을 때 뿐여”라는 말 대신 “세우면 집행된다”라는 강력한 행정력이 발휘되는 힘 있는, 실천하는 지방 정부의 행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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