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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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9)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6.15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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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왜적의 기습적인 공격과 아들 완기의 희생
 
적들은 어둠을 틈타서 은밀히 정탐병을 보내서 의병부대 상황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정규군도 아니고 무기도 보잘것없을뿐더러 병력의 규모도 크지 않은 의병의 임전 상태를 적이 탐지한 것이다. 더구나 후속 부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적으로 하여금 선제공격을 감행할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왜적들은 조총으로 무장한 정규군이다. 그날 밤, 적은 어둠을 이용해서 은밀하게 의병을 포위하기 시작한다.

당시 왜군의 전투부대를 3~4진으로 편성하여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는 전법을 기본으로 했다. 제1진은 기병(騎兵)으로 기치(旗幟 깃발)를 가지고 적진에서 2개 제대로 분열하여 적을 포위할 태세를 갖추면, 총병(銃兵)으로 편성된 제2진이 적의 정면으로 진출하여 조총을 쏘면서 돌격을 감행하고, 그 뒤로 궁병(弓兵)이 진격하고, 최후로 장검을 가진 제4진이 백병전(白兵戰)을 벌이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전법을 사용했다. 

8월 18일, 날이 밝기 전에 드디어 적의 기습적인 선제공격이 시작되었다. 왜적은 중봉의병과 거리를 두고 있는 영규의 승병 진영에도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예기치 못한 적의 기습공격에 놀랐으나 조헌은 침착했다. 그리고 의병들에게 엄하게 명했다.

‘오늘은 오직 단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고 살고 앞으로 진격하고 물러남에 있어서 의(義) 자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今日只有一死死生進退毋愧義字)’

군사들은 이러한 의병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조금도 어기지 않았다. 적은 3개 제대로 편성해서 교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첫 기습공격에서는 전투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의병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곧 안정을 찾으며 적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의병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용감하게 저항하는 의병들의 강한 기세에 놀란 왜적들은 오래 견디질 못하고 일단 물러섰다. 이미 날은 밝았고 피아간에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첫 교전이 끝나자 이어서 적의 제2진이 숨 돌릴 틈도 없이 공격을 가해왔다. 조총으로 무장한 병력도 섞여 있었다. 이에 재빠른 궁수들의 응수에 적은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조헌은 북을 치며 독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도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군사들의 피해는 늘어가고 상황은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어 갔다.

형세가 위급함을 느낀 척후장 임정식(任廷式)이 말을 몰아 앞으로 돌진했다. 놀란 왜적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의병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적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혼자서 여러 명의 왜적을 격파한 임정식이 결국은 적에 포위되었다. 임정식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용감하게 싸웠으나 끝내 적의 칼날에 전사하고 말았다. 적의 기세는 주춤하고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오후 늦게 적의 세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열세한 전투력의 의병이었으나 죽기를 각오한 의병들의 분전은 놀랍고 눈물겨웠다. 피아간에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을 때 조헌을 따라 참전한 아들 완기(完基)가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는 적을 섬멸할 수도 없고 부친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는 대장처럼 의관(衣冠)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말을 몰아 선두에 나섰다. 자신이 의병대장인 것처럼 꾸며서 적을 유인하고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계책이었다. 

완기가 말을 달려 적과 대적하자 적들은 그를 의병대장으로 오인하고 일제히 집중하여 공격을 감행해왔다. 의병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적의 배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적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의병도 피해가 늘어갔다. 적에 싸여 용전분투하던 완기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적의 칼날에 쓰러지고 말았다. 완기를 의병대장으로 오인한 적은 쓰러진 완기에게로 벌 떼 같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완기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고 짓이기기 시작했다. 

시신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때 그의 나이가 23살로 꽃다운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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