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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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8.0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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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냥 빚

윤건영 충청북도교육감이 ‘교사는 예비살인자’라는 발언으로 교육계는 물론 지역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물론 하루 만에 사과를 했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명색이 충청북도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상식 이하라는 지적이다.

윤 교육감은 지난달 25일 정교사 자격연수 특강에서 “교사는 예비살인자라 인정하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 자세가 안되겠다 싶으면 사퇴하고 나가라”고 했다. 해당 발언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전파되면서 일파만파 확산되고 말았다. 

화자보다는 청자의 해석에 달려

우리는 윤 교육감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 외부로 퍼졌든 그저 내부 관계자들만 들었든 그걸 따지려 한 게 아니다. 그러한 말을 했다는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물론 윤 교육감이 교사들이 모두 학생들을 때리고 죽이는 살인자라는 의미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참석 교사의 말처럼 교사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자르고 살인까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라는 건 화자(話者, 말하는 사람)보다는 청자(聽者, 듣는 사람)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말을 했어도 그러한 말을 듣는 사람이 오해를 하거나 잘못 듣는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렸다는 이번 장마. 비록 우리 옥천에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망자 못지 않은 고통이 뒤따랐다. 어떤 농가는 힘들게 일궈 놓은 밭이 장마로 쓸려 나가 그동안 피땀 흘려 일궈 놓은 노력이 물거품 돼 버렸는가 하면 어떤 농가는 집 아래 절개지가 비에 쓸려 나가 멘붕(멘탈붕괴)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어떤 집은 커다란 나무가 뿌리채 드러나 언제 넘어지지 모를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으며 전신주 아래 흙이 파헤쳐져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민들 존재하지 않으면
그들도 존재가치 없어

문제는, 이러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도 평온하고 조용하다. 언제 비가 왔으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모양새다. 모르긴해도 그들은 장마와 관계없는 철벽 집에서 사는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오래전 헤어진 연인과 비를 맞으며 걷던 추억의 돌담길을 회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피해를 당한 군민이 전후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도움을 달라고 하면 “아직 넘어지지는 않았지 않았느냐”라며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투의 말로 마무리 짓고 만다. 

또 “국유지라면 몰라도 사유지 내에서 발생한 피해는 개인이 복구를 해야 한다”며 지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회피하고 있다. 참으로 편안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공무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고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작자들이라는 것을. 

그러나 필자같이 힘없는 서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존재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고 피곤할 뿐이다. 그러고도 날짜만 되면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조용히 있다가 정년이 되면 연금이나 타면 된다는 사고에 점철돼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인가. 그래서 우리같은 약자들은 그들의 사고를 이해할 수도 없으며 대화마저 나눌 수가 없다.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소 귀에 경 읽기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말이라는게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또 한번 내뱉은 말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말이란 아무리 좋은 말도 상대방에게는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고 그냥 흘러 해보는 말인데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천냥 빚을 졌으며 
마음에 상처 남겨

이번 장마를 겪으며 느낀 사실 하나는 어차피 해결해 줄 능력도, 힘도 없는 위치에 있다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 당사자들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했어야 했다. 그 자리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되니’ ‘안되니’ 한단 말인가. 일단 민원이 발생했으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그저 법이라는 족쇄에 갇혀 마치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버린다면 그게 무슨 지자체이고 공직자들인가. 당신들은 그렇게 법을 잘 지키며 빈틈없이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도무지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안된다라는 단서를 달고 시작한다.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덤벼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안된다는 생각이 앞서 있으니 될 것도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지자체나 공직자는 우리 사회에 존재할 가치도 없으며 당장 사라지는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도 언젠가는 퇴직이라는 절차를 밟아야 하며 퇴직 후에는 그들이 즐겨 쓰는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모르긴해도 그때가서 ‘안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발정난 얼룩말처럼 길길이 날뛸 것이다. 이번 장마에서 옥천군은 군민들에게 천냥 빚을 졌으며 너무도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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