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육영수 여사 49주기 추모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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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영수 여사 49주기 추모제’ 개최
  • 박우용 기자
  • 승인 2023.08.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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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영수 여사 서거 4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임상호 옥천군애향회장, 황규철 옥천군수, 육씨 종친회 육동일 회장,박덕흠 국회의원,박한범 옥천군의회의장,
고 육영수 여사 서거 49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임상호 옥천군애향회장, 황규철 옥천군수, 육씨 종친회 육동일 회장,박덕흠 국회의원,박한범 옥천군의회의장,

‘제 49주기 고 육영수 여사 추모제’가 열렸다. 15일 오전 11시 옥천여성회관 고 육영수 여사 동상 앞에서 열린 이날 추모제는 옥천군애향회(회장 임상호)가 1989년 군민 성금을 모아 동상을 세운 뒤 1993년부터 광복절을 기해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육씨 종친회 회원을 비롯한 지역기관 단체장과 주민 등 300여 명이 함께 했다. 대구 경북지역 육영수 여사 추모단체인 목련회를 비롯해 정수회, 근사회 회원들도 함께 했다.

애국 애민사랑 정신 계승해야

추모 행사에 참여한 황규철 옥천군수는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한결같은 마음으로 추모제를 준비하는 옥천군애향회 임상호 회장을 비롯한 회원과 육씨 종친회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참여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아픔을 겪는 이웃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따뜻했던 참봉사 정신을 일깨워준 고 육영수 여사의 애국 애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이웃사랑과 나라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한곳에 모아야 한다”고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각별한 관심으로 복지 실현

박덕흠 국회 정보위 위원장도 “오늘은 8·15 광복절 기념식과 함께 국민에 대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목련화 같은 삶을 살다 가신 고 육영수 여사님의 삶을 추모하고 기리는 날이다. 특히 고 육 여사는 60~70년대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각별한 관심과 복지혜택 실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주셨고 대한민국의 표상이시면서 국민의 어머님이셨다”며 “그분의 숭고한 뜻과 넋을 기리기 위해 옥천군민분들과 육씨 종친회, 추모제를 준비해 주신 옥천군애향회를 비롯한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당신의 참모습을 다양한 시각을 통해 우리 역사에 각인시켜 놓으신 여사님의 명복을 빌며 삶과 영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고 했다.

당시 40대 젊은이도 
부모님같이 생각

육씨 종친회 육동일 회장은 “사랑과 봉사의 애민정신과 근검절약 정신으로 삶을 산 고 육영수 여사는 직접 재봉틀을 돌려서 군인들에게 위문품을 만들어 주고 정성껏 편지를 써서 국군장병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3선개헌과 유신체제를 하려고 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하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감싸주고 그들을 구속하려는 관리들을 엄하게 질책하셨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우리 국민들은 어머니 같은 모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 당시 연세가 많으신 윗 세대분들도 40대 영부인을 부모님같이 생각했었다. 어려운 시기와 때에 먼저 달려 나와 국민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봉사와 사랑을 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신을 이어받고 추모하는 이 자리가 후세에도 이웃사랑과 봉사 정신의 산교육 지표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정치나 이념 떠나 국모 
추모제 관심 가졌으면

임상호 옥천군애향회 회장은 “옥천이 고향이신 여사님의 숭고한 대민정신과 봉사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서거일에 맞춰 매년 실시하는 추모제는 말 그대로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본받음의 순수한 추모 행사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옥천군애향회 회원들의 자체 예산을 편성하여 추모제를 열고 있다. 초창기 추모제 때부터 애향회원들의 회비를 이용한 자체 예산으로 추모제의 모든 경비를 집행해 오다 옥천군에서 2014년부터는 군비를 200여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정치와 이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추모제에 진보정치인들과 진보언론 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격심하여 2017년부터는 다시 옥천군애향회의 회원회비 자체 예산으로 열고 있다”며 “지역의 시인, 음악가, 의병, 학자 등의 사회단체 행사에는 지자체의 지원금이 적극 지원되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국모로 추앙받고 있는 고 육영수 여사의 추모제에 옥천군의 관심은 미흡하다. 애향회 회장을 떠나 옥천군민으로써 바람이 있다면 정치나 이념을 떠나 옥천에서 나고 자란 국모의 추모제에는 관심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 강조했다.    

     
육영수 여사는 1925년 옥천군 육종관과 이경령의 사이에서 1남 3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옥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화고등여학교를 입학졸업 후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박정희 소령과 1950년 결혼, 1963년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중령이 당선되어 청와대에서 영부인으로 생활했다.

1969년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다음 해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하였고, 소록도 국립나병원에 양지회 회관을 건립하는 등 정치와는 관계없는 소외계층 봉사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40대의 영부인으로서 국민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들었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이 개최된 서울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생을 마쳤다. 당시 육영수 여사는 향년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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