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8)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8)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0.12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을 보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지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축하 전화를 해왔다.

16대 학장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NMC 역대 원장님들과 의사들은 물론 서울대, 연대, 고대를 비롯해 전국 간호대학 학장님들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많은 축하를 받았다. 100개가 넘는 축화 화분으로 대강당 앞이 가득했고, NMC 동문들은 42년 만의 동문 학장의 첫 취임에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취임식 단상에는 최영희 국회의원, 김화중 간호협회장, 도종웅 원장, 안병훈 전원장님 등이 차례로 축사를 해 주셨다.

나는 취임사에서 특히 D 원장님에 대한 예우에 각별하게 신경 썼다.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오늘 우리 대학의 숙원이었던 학장 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D 원장님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비록 학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감정이 상한 점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제는 어떻게든 병원과 학교의 두 기관장이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학교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의 이런 노력으로 D 원장님도 편안한 표정으로 축사를 해 주셨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설렘 속에서 취임식은 끝났고 이제 나에게는 학교를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이끌어가야 할 사명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순리를 따르면 가만히 있어도 기회가 온다는 것을 절감 했다. 과거 두 차례 학장 자리를 거절했던 일이 옳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본 것이다. 그때 나는 학장이라는 자리 앞에서 다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사심 없는 판단을 한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 확대간부회의 
멤버가 된 사연

42년 만에 간호학 교수로서 첫 학장이 되면서 남다른 사명과 임무가 무겁게 느껴졌다. 우선 내가 해결해야 할 급선무는 학교와병원 간의 관계 재정립이었다. D 원장은 훤칠한 외모에 자존심이 강한 특유의 경상도 기질을 가진 분으로서 병원 내에서 간호사 친화적인 의사는 결코 아니었다. 과거 40여 년 간 원장이 학장을 겸직해왔기 때문에 간호대학 교수들에게 원장님은 늘 상관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같은 관습적인 상하 관계 의식이 남아있는 한 독립적인 학교 발전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D 원장과 동등한 위치에서, 두 기관 의 기관장으로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는 게 내가 실현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학장인 나의 위상이 곧 간호대학의 위상이고, 학장인 내 얼굴이 간호학 교수들의 얼굴이며 내 품격이 곧 간호의 격이라는 생각에 나의 존재감을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원장을 만나 앞으로는 전과 달라졌으니 서로 대등한 관계로 상호 존중하며 지내자고 유치한 말장난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향후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으로 전개되었을 때, 얼굴을 붉히며 서로 적대시하며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궁리 끝에 묘수를 찾았다. 일단 복지부 장관께 인사 겸 장관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급히 장관 면담 일정을 잡자니 12월 말경이라서 쉽지 않았다. 급한대로 나는 평소 호의관계였던 민주당 정대철 대표께 장관 면담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장관실에 들어가니 최선정 장관님께서는 이미 내 인적 자료를 훑어보고 계셨다. 나는 장관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제가 막상 학장이 되고 보니,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조건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겸직 금지와 책임경영제 정책이 현실적으로 성공하려면 새로 된 학장이 이름뿐이 아닌, 직책과 지위에 맞는 권한과 힘이 있어야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58년 이후 지금까지 수 십 년간 원장이 학장을 겸직해온 학교가 갑자기 학장을 분리했다고 대학이 저절로 독립적으로 굴러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장관님께서는 저의 이런 애로사항을 해소해 주시는 데 힘을 실어 주셔야 합니다. 다름 아니라 오랫동안 복지부 확대간부회의에 국립의료원장이 참석해 왔 습니다. 원장은 학장직도 가진 두 기관의 장 자격으로 복지부 확대간부 회의에 참석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두 기관의 장이 분리되어 학장이 새로 취임했으니 지금부터는 학장도 이 회의에 원장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석하게 해 주십시오. 이 문제는 학장인 제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장인 저는 국립의료원장과 동등한 자격을 장관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첫걸음을 밟게 됩니다. 이로써 원장과 학장의 대등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말씀드릴 것은 회의장에서 원장과 학장 자리를 상석과 하석 개념 없이 언제나 나란히 명패를 놓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제가 참석하는 첫 회의 때 간호대학장이 독립되어 확대간부회의 멤버가 되었음을 공식화하기 위해 장, 차관, 실·국장, 그리고 외부 기관장들에게 저의 짧은 인사 말씀을 드릴 기회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시간 정도 진솔하게 말씀드렸더니, 장관님께서는 내 말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바로 비서관을 부르셨다.

“바로 간호대학에 공문을 발송해서 모레 연말 종무식부터 학장도 참석하라는 공문을 발송하라.”

“장관님, 학장인 저한테 공문을 보내실 게 아니라 병원 원장한테 보내주셔야지요.” “아~ 국립의료원 원장한테 보내라.” 둘이 같이 하하 웃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