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충신, 중봉 조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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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충신, 중봉 조헌 선생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3.10.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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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한양서 의주 피난, 조헌 의병장 청주성 탈환, 금산 순국

조헌 선생(1544~1592년)은 조선 중기 대유학자이며, 시인, 경세가이고 패전을 거듭하던 관군과는 달리 임진왜란 초기에 청주성을 탈환하여 조선에 첫승리를 안겨준 의병장이시다. 그는 조선의 대유학자, 동국18현으로 성균관 문묘와 전국향교에 배향되었고 영의정에 증직된 만고충신이다. 중봉 조헌(趙憲)의 본관은 배천(白川)이며 1544년(중종 39년) 6월 28일 김포군 감정리에서 아버지 조응지(趙應志)와 어머니 용성 차씨(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후율(後栗), 도원(陶原)이라 하였고 임진왜란 때 충청도 의병장으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싸움에서 순국한 공로로 조정에서 문열(文烈)이란 시호를 내렸다. 1566년(명종 20년) 성균관에 진학하여 24세에 문과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처음 교서관이 되었다가 정주, 파주, 홍주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조헌은 파주목 교수로 있을 때 우계 성혼(成渾), 율곡 이이(李珥)와 교류를 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서인으로 지목되었다. 1572년(선조 5년) 교서관 정자에 임명되었고 1574년(선조7)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호조, 예조좌랑, 사헌부감찰을 거쳐 통진 현감이 되었으나, 죄인을 장살한 일로 탄핵되어 경기도 부평에 유배되었다. 1581년 공조좌랑, 전라도사, 종묘서령을 지내고 1582년 봉양을 위해 어머니가 계신 보은 현감으로 나갔다.

임진왜란 초, 청주성 탈환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옥천을 비롯한 충청도 의병을 이끌고 8월 1일 왜군이 점령한 청주 탈환전에 영규대사 의승군, 박춘무 의병장 등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는 큰 공을 세웠다.
조헌은 8월 17일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기 위해 700명 의병과 영규대사 의승군과 함께 금산 연곤평에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다. 이에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 후율당 부근에 장례를 모셨다. 조정에서 그 해 12월에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 춘추관 의금부사의 벼슬에 추증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봉해졌으며 그의 부친과 함께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그의 묘소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있다. 

1656년 신도비를 건립했는데 청음 김상헌의 글을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옥천 표충사와 금산의 칠백의총 종용사, 금산 성곡서원 보은 상현서원 등에 그의 충절을 받들어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동환봉사(東還封事)」,「청절왜사소(請絶倭使疏)」-상소문, 「조천일기(朝天日記)」, 「중봉문집」이 있다. 칠백의총 박물관에 소장된 문과 급제 교지와 화살통 등은 국가 보물 1007호로 지정되었다.

금산싸움에서 순국한 중봉 선생의 유해는 동생 조범이 그곳에서 업고 와서 유림과 제자들에 의해 별도로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 후율당 부근에 안장하였으나, 1636년(인조14)에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현재 조헌 의병장의 표충사 위편으로 이장하였다.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에서 매년 가을 조헌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추모제향을 비롯한 ⌜중봉충렬제⌟ 옥천군 일원에서 개최하며 안내면 후율당에서 매년 춘계제향을 올린다. 경기도 김포시에서는 중봉문화제와 우저서원에서 제향된다.

대학자 시인 중봉 조헌 선생
 
의병장 조헌 선생 하면, 임진란 당시 의병장으로 만 생각한다. 조헌 선생은 대유학자로 성리학의 의리정신인 충효를 직접 실천했던 조선 중기의 훌륭한 경세가이며 국방강화론자였다.

중봉 조헌(趙憲) 선생은 경세가이며 성리학자이지만 특히 문인으로써 330 수의 많은 시를 남긴 대시인이다. ▶시는 칠언절구가 178수이며 칠언율시 85수이다. 중봉 조헌 선생의 ≪지당에 비 뿌리고≫ 시조 한 수를 감상하자.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沙工)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夕陽)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더라

이 시조를 풀이하면 연못에 비 내리고 버드나무에 안개가 끼어 있는데, 뱃사공은 간 곳이 없고 빈 배만 매어 있다. 저녁볕을 받으며 짝 잃은 갈매기만 날아다니는 한 폭의 그림 산수화같은 서정시다. 다시 말하면 비는 오는데 자신은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처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시비(詩碑)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조헌 표충사 잔디광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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