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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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9)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0.19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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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출근하자마자 D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송 학장님, 복지부 장관님으로부터 공문이 왔는데 내일 종무식에 학장님도 참석하라는 공문 내용이네요. 내일 같이 가시지요.”

“어머 그런 공문이 왔어요? 복지부에서 그런 공문이 왔으면 저도 참석해야겠네요. 알겠습니다.”

다음날 12월 31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복지부를 찾아 처음으로 복지부 종무식에 참석했다. 장·차관을 비롯하여 전 복지부 직원과 복지부 산하 기관장들이 다 모였다. D 원장님과 나는 나란히 서서 종무식을 마친 후 별도의 간부다과회 장소로 이동했다. 공보관이 사회를 보며 장관 인사가 첫 순서로 장관님께 마이크를 넘겼다. 장관님께서는 공보관이 내민 마이크를 도로 내밀며 “내 말이야 매일 듣는 말이니 또 할것 뭐 있나? 오늘 혜성과 같이 나타난 송 학장님의 말씀을 한 번 듣기로 하자.”라고 예정에 없던 마이크를 내게 넘기셨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참석자의 시선은 그 순간 놀라서 일제히 나를 향했다.

“장관님께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무슨 스피치를 하겠습니까?”

나는 일단 고사하면서 속으로는 차라리 장관님이 기회를 주실 때, 학장으로서 전체 간부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가 사양하자 공보관은 다시 장관님께 마이크를 넘기려 했고, 장관님은 다시 나를 지명하여 인사말을 권유하셨다. 이렇게 두 번을 사양한 끝에 세 번째 다시 권하셨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받은 모양새를 취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가능한 한 짧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관님께서 주신 마이크를 잡고 첫인사를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처음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보건·복지 행정의 정책 본부인 복지부 종무식에 참석하면서 국립간호대학의 장으로서 향후 저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앞으로 우리나라 보건 행정 분야에서 간호가 기여하고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향후 저도 열심히 더 연구하고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제게 이런 귀중한 기회를 주신 장관님께 감사드리고 이 자리에 계신 훌륭한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참석자 모두가 박수로 환영해주었다. 일단 첫 무대에의 등장은 괜찮았고 D 원장님도 인사말 잘했다고 거들어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복지부 확대간부회의에 막상 참석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실제로 매달 복지부 각 실·국별 산하단체장 별로 한 달간의 실적과 현황을 브리핑하는 일은 간호대학의 장으로서는 솔직히 고민이었다. 복지부 실·국은 당연히 주무 부처의 한 달간 계획된 주 업무가 있고, 또 3개 산하단 체장인 식약처장, 국립의료원장, 국립보건원장들도 나름 보건복지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보고할 내용이 많지만, 성격적으로 교육기관인 간호 대학의 기능상 보건복지 부처에 한 번도 아니고 매달 리포트 할 내용은 실제로 많지 않아 나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보건사업과 관련된 프로젝트 개발, 그리고 우리나라 간호사업과 해외 국가별 특징과 차이점 등 복지부에서 관장하고 관심 가질 만한 특정 내 용을 작성해서 매달 발표하느라 속으로는 혼쭐이 났다. 그런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는 4대 장관 즉 최선정 장관을 시작으로 이태복, 김원길, 김화중 장관님에 이르기까지 거의 3년간을 확대간부회의의 정규 멤버로 꼬박 참석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 부처에 간호를 알리는 기회가 많았고, 보건복지에 간호의 기능과 역할이 혼재함도 알릴 수 있어 간호의 위상 정립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러다가 간호학 교수인 김화중 장관님이 취임하시면서 한두 번 참석하고 불참하기로 했다. 총무과장이 몇 번이나 전화해서 왜 나오지 않느냐고 채근했지만, 나는 김 장관님이 오셨으니 더는 특별히 복지부에 간호에 대해 인식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국립의료원 내에서도 학장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목적도 달성되었기 때문에 더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의료원장과 학장간 위상 문제를 자연스럽게 정립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원장님, 저와 차 한 잔 하시지요

복지부 확대간부회의가 끝난 후 가끔 점심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늘 장관님 옆자리는 내 자리로 마련되었다. 처음에 나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언제나 장관님 옆자리에서 식사하곤 했 다. 확대간부회의 멤버에 유일한 여성에 대한 예우로 생각되어 속으로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최 장관님께서는 2001년 2월 거행된 우리 대학 졸업식에, 팔을 다쳐서 깁스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여 축사를 해 주셨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게 장관님께서 팔을 다치셔서 졸업식 참석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장관님께서 간호대학 행사는 팔이 불편하더라도 참석하여 축사하시겠다고 해서 특별히 참석하신 거라고 귀띔해주셨다. 장관님께서 알게 모르게 학장인 내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장관님의 국립의료원 연초 순시 때나 병원 행사에 참석할 때도 으레 내 자리를 단상 위에 마련했고, 식사 기회가 있을 때도 깍듯하게 상석에 예우해주었다. 내가 처음 학장이 된 후 국립의료원 행사시, 대강당 단상 위에 원장과 나와 나란히 앉고, 나머지 의료부장, 각과 임상과장, 스탭 닥터들이 단상 아래 자리했을 때, 의사들의 표정은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우먼 닥터들의 표정은 그 못마땅함이 더욱 노골적이었다.

나는 이런 광경들을 경험하면서 과거 수십 년간 젖어온 관습으로 인한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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