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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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3.10.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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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싸울 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섭다. 상대의 약점만 골라 무차별 공격을 퍼부을 때면 오빠 내외의 앞일은 불을 보 듯 뻔해 보인다. 입에서 쏟아지는 말마다 

불꽃처럼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분노가 머리 위로 치솟아 당장이라도 끝장을 내고 말리라 다짐하는 그들이다. 뿜어져 나온 미움과 원망이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혀 함께 있는 자조차 더불어 생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웬 아이러니란 말인가. 금방이라도 돌아설 것처럼 싸우다가도 얼마 안 되어 사랑스런 눈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는 걸 보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사랑도 싸움도 정열적이라 그런지 결혼한 지 서른 해를 넘긴 지금까지 한 이불 덮고 잘 살고 있다.

오빠는 일할 때도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맨땅에 씨를 뿌려 그 씨를 밑천 삼아 세상에 우뚝 섰다. 뿌린 씨앗이 트기를 손놓고 기다리는 법이 없다. 씨앗이 제 일하는 동안 한발 앞서싹의 미래를 준비했다. 

남보다 늦게 자고 일찍 깨어 시간을 벌었다. 서른 즈음부터 꽃가게를 시작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늦은 출발이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의 성을 쌓을 때 필요한 벽돌을 사다 나르는일이라 생각했다. 오는 손님을 맨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주인장의 열정에 현혹되어 충동구매를 하는 이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그러면서도 외려 선물받은 기분으로 퇴장한 손님들은 서둘러 다음 방문을 기다렸다. 오빠의 주머니도 두둑 해졌다.

도매상으로부터 사들이는 물건이 마뜩잖아 원하는 묘목을 골라 고향에 직접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평수를 넓혀가며 나무를 심었다. 성년이 될 나무를 상상하며 일에 몰두하다 보면 그의 하루는 늘 모자랐다. 

점점 땅을 넓혀 지금은 이만 평이 넘는 들녘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그림에서나 볼 법한 잘생긴 나무들이 그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난다.

키운 나무가 안착할 곳을 위해 또 다른 일을 계획했다. 갖가지 면허를 취득하여 조경공사에 뛰어들었다. 오빠의 열정은 더욱 날개를 달았다. 튼실한 나무를 길러내듯 반듯한 공원을 창조하는 건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에움길에서 고혹적인 여인을 마주한 것처럼 의외의 설렘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오빠는 더 야무진 그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을 지어 보리라.’ 우선 별장 짓기로 자신의 무대를 시험했다. 생각보다 그럴듯하여 다음 일정을 서둘렀다. 

조경, 토목, 건축을 아우르는 종합건설업의 밑그림이 착착 현실로 증명되었다. 40층 넘는 마천루를 짓고도 아직도 그 열정은 지칠 줄 모른다.

굴지의 회사를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렸지만 이럴까 저럴까 갈등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강렬한 그의 열정이 흔들리는 눈빛을 가만두지 않았다. 왜 시련이 없었을까. 

그것도 죽을 각오로 맞서는 그에게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시련이 힘없이 꼬리를 내리면 오빠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어떤 순간에도 그의 투지는 즐거움에 기반한 일상일 뿐이었다. 고향에갈 때마다 오빠의 아방궁을 들른다. 일흔 살을 향해 가고 있지만 하늘과 맞닿은 푸르디푸른 우듬지를 보면 여전히 그는 청년 시대를 사는 것 같다.

오빠를 생각하며 권태로운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훨씬 어린 나이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낡아버린 느낌이다. 지레 겁을먹고 서둘러 짐을 싸는 모습이 참 못났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어 마음이 고개를 숙이면 몸도 더욱 힘을 잃고 마는 게 문제다.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엎치락뒤치락 서로에게 상승작용을 하는 거 같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몸의 엄살을 받아주지 말아야 하는데, 번번이 실패다. 늙어도 새로울 수 있음을 믿고 실낱같은 에너지라도 쥐어짜다 보면 마음이 활기를 얻지 않을까. 마음이 활기를 찾으면 권태는 자연히 사라질 터인데. 

요즘 들어 더욱 나른한 권태는 생활 전반을 점령한 기분이다. 며칠 전에도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의기소침해졌다.

자기주장이 강한 남편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두말 거푸 하지 않았다. 말을 이으면 더한 반격이 올 텐데 그것을 받아칠 자신이 없다. 흐지부지 무마하려 드는 자신이 참으로 비겁해 보인다. 속은 말라비틀어진 무말랭이처럼 배배 꼬여가면서 겉은 평화로운 척 위선을 떤다. 숨만 쉰다고 살아 있는 건가. 그럴듯한 평온함에 숨어 번번이 문제없음으로 마침표를 찍고 만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은 못 되더라도 나인 채로 살다가 죽고 싶다. 밀려나고 포기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까 봐 두렵다.

죽을 듯 싸우는 오빠 내외가 이해된다. 사랑도 미워할 때처럼 열정적인 그가 부럽다. 

싸우는 일은 치열하게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자기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강한 사람은 타인을 인정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눈치만 보다가 풀 죽어 사는 것은 권태로 가는 지름길이다. 부딪혀 보고 아프면 아프다 소리칠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이상이 쓴 수필 <권태>가 떠오른다. 도회인인 그의 시골 생활은 처음 며칠간은 꿈같았으나 죽은 듯 변함없는 풍경이 권태롭기 짝이 없다. 

머리 위에 떠오르는 별조차 싱겁기 짝이 없고 날이 어두워지니 습관처럼 밥을 먹고 멍석 깔고 자는 그곳 사람들이 마치 시체처럼 보인다. 권태에 빠진 시골 풍경을 보면서 ‘권태의 흉악함을 자각할 줄 아는 나는 행복한 존재다.’며 고백한다.

내면에 잠재된 열정이 하도 많아 오히려 권태에 자주 노출되는 이상처럼은 아니더라도 나도 권태의 흉악함을 무시로 느낀다. 틈만 주면 모래주머니를 달고 물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권태가 그의 올가미에 나를 끌어들이려 한다. 더 이상 묶이고 싶지 않다. 

알알이 튀어 오르던 열정을 아무렇게나 허비해버렸으면서 채권자처럼 다시 돋아나길 바라는 오만함을 어찌해야 하는가.매일 싸우면서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빠 내외는권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들이 정해놓은 수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게 아닐까. 

한바탕 싸우고 나면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 한결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 테니까.

‘그리스인 조르바’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주춤거리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거나 민망한 순간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순간에 열정적으로 충실했다.

죽음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주무르고 싶어 선 채로 죽었다. 

그는 꿈을 이뤘고 그의 열정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열정은 나답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다.

권태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생각을 접고 지금 당장 뭔가를 시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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