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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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0)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0.26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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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병원 연말 파티에 초청받았는데, 일이 있어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직원이 나를 안내했다. 나는 늦은 것이 미안하여 둘러보니 원장 이하 의료부장, 임상 과장들이 모두 앉아 있었고, 원장 옆자리 가장 상석으로 안내받아 저녁 식사를 했다. 나중에 들리는 얘기가 나보다 조금 먼저 들어간 의료부장이 원장 옆 빈자리에 앉으려 했더니 원장님이 제지하며 “그 자리는 송 학장님 자리니까 다른데 앉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본 어떤 의사가 우리 원장님은 맨날 송 학장만 챙긴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웃었다. 42년간 의사가 왕으로 살아온 병원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간호학 교수를 상관으로 모시는 낯선 풍경에 어찌 반항하지 않는 의사가 있으랴.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될 것이고, 익숙해지면 그들도 편안해질 것이니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립의료원 장례식장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중구 국회의원이면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 대표였던 정대철 대표를 비롯해 VIP들이 참석해서 마지막 순서로 삽으로 흙을 떠서 장례식장 공사현장에 뿌리는 행사였다. 사무국에서 준비한 장갑과 삽을 담당 직원이 VIP에게 가져다주는 시간인데 가장 먼저 정대철 대표님께 장갑을 드렸다. 그러자 정 대표님은 얼른 장갑을 받아서 옆에 있는 내게 재빨리 “이거 학장님 먼저.” 하면서 건네주고 또 직원이 삽을 가져다 정 대표께 드리자 또다시 “이것도 학장님 꺼.” 하면서 연신 내게 먼저 건네주셨다. 그때마다 나도 당황했지만 보고 있던 참석자들과 직원들도 당황했다. VIP가 챙겨주는 사이 나는 저절로 VVIP가 되어 있었다. 정 대표님은 학교에 대한 나의 열정과 능력을 평가해주시고 내가 하는 일에 음으로 양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대로 병원 원장과 대학 학장은 공존하는 두 기관장으로서 서서히 그 위상이 굳어져 갔다. 나는 학장의 격이 곧 대학의 격이고 교육기관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은 한시도 잊지 않고 나의 말과 행동에 엄격했다. 그런 노력만이 학교를 지키고 간호를 지키는 일이라는 강박관념까지 있었다.

나는 학장이 된 후로 의도적으로 원장실에 가지 않았다. 과거에 간호대학은 원장이 학장인 겸직제도 하에서 국립의료원 특별회계였기 때문에 제도적으로는 회계상 학장이 원장에게 예속되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획예산처에 병원예산과 학교예산을 분리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다. IMF 이후 99년에 NMC 폐교 사건으로 만나 갑론을박하며 결국 폐교를 막았던 그 당시 예산처 과장, 서기관, 사무 관들을 만나기 위해 정명실 교학과장을 동반하고 찾아갔다. 99년 당시 우리 대학에 대한 고충을 상세히 설명한 일이 있기에 예산시스템에 관한 한 대화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 예산 시스템을 개정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일이라고 예산처 공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도 나는 이 예산제도를 손보지 않고는 교육기관으로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훼손되어 학교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회계시스템은 개선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들은 이미 서너 차례나 NMC 간호대학의 구조조정 위기를 내가 설득해서 막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공무원들이라 나의 진정성과 순수한 열정을 평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 요청에 시간을 가지고 연구해보겠노라고 긍정적으로 응해주었다. 또 남편이 전윤철 예산처 장관한테도 NMC 간호대학 회계의 불합리성을 얘기하도록 부탁했다. 이런 양면의 노력 이후 다시 만난 예산처 과장은 내게 국립의료원 회계에서 병원예산과 학교예산을 분리하여 대학 예산은 학장이 독립적으로 쓸 수 있도록 개정했다고 엄청나게 치사를 했다. 그러면서 과장은 “학장님은 앞으로 학장 임기 4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이 예산 개정한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것은 쉽게 손도 댈 수 없는 정말 어려운 일을 성사시킨 것으로서 정말 학장님은 학교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큰일을 하신 겁니다.” 나와 정 교수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기쁜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 과장 말대로 내가 고민하던 학교의 큰 숙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대학의 위상과 기본격을 갖추어 나가는 일에 소리 없이 매진하며 내 머리에 그린 그림대로 채워갔다. 특히 내가 신경을 쓴 것은 원장과의 회합장소였다. 남들은 왜 그런 일이 중요한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이 위계와 상하 관계를 조성하는 첫 단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새로 만들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학장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학교 일들을 학장인 원장님께 보고 하고 상의하기 위해 교수들은 언제나 원장실을 찾아갔다. 그런 관행이 42년간 이어졌기 때문에 향후 병원 임상 실습 또는 행사 건으로 원장과 협의할 사항이 있을 시엔 관행적으로는 내가 원장실을 찾아가 협의해야 했다. 그래서 첫 학장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또 하나의 관계설정의 패턴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원장실을 찾아 협의 하는 일이 시작되면 그것이 원장과 학장 간 관계설정이 되고 관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민감한 일로서 나도 원장도 자존심 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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