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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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1.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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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지용의 시론(時論)과 나와 아들 
지워도 표시나지 않는다는 「실적도(失籍島)」를 지나며

큰아들의 사회지도 그리기 숙제를 떠올려본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마분지를 접고 접어 위선과 경선을 표시하느라 방학 내내 두문불출하던 아이. 빨리 그리지 못하고 느릿느릿 게으름을 부린다고 핀잔을 들으며 한국지도를 완벽히 완성하였던 아이. 그 아이가 의경을 제대하고 내 옆에 앉아 손을 잡는다. 

행여나 어머니의 하는 일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조심 다가온다. 추자도까지 빼놓지 않고 섬세히 그려 넣던 그 작던 손. 방학 내내 땀이 범벅이 되도록 그리고 지우고 접기를 수백 번 하던 아이. 그 아이가 이렇게 자라 내 옆에 있다. 

이렇게 삶은 이어지나보다. 내가 정지용을 기억해내듯 또 다른 누군가 나를 기억해내지 않을까? 

옥천군이 중국 연변 윤동주 생가에 정지용 시비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옥천군 수장과 문화계 대표가 연변을 다녀와 보도됐고, 연변지용제에도 다양한 관련자들이 방문해 성황리에 행사를 치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군민들의 반응은 “왜? 연변에?”라는 의문의 목소리를 연신 신음처럼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정지용의 전기적 연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앵무새처럼 말하지 말고, 꼭 알아야 하는데 간과하고 지나치는, 몰랐던 것들에 애정이 결핍되지 않았나 살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옥천만의 정지용으로 군민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이 정지용을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정지용의 시론(時論)과 도덕주의자로서의 면모와 윤동주의 영향관계는 무관하지 않다. 그는 윤동주가 민족에게 가지는 소속감이나 애착심 그리고 그것을 강조하는 시인으로 조국과 민족 앞에 한갓 시나 쓰는 부끄러운 자아성찰의 자세를 일깨우는데 일조하였다. 

문학평론가 김환태(1909~1944)는 「정지용론」에 “정지용은 아직 우리에게 완성하였다는 느낌을 주는 시인은 아니다. 그는 앞으로 몇 번이나 변모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여 줄는지 모르는 미완성의 시인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정지용은 우리를 그의 시적 감흥에 놀라게 하기도 하고, 그의 삶에 나타난 고뇌에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특히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시를,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수필을 주로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는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고, 1946년부터 많은 산문을 발표한다. 

이것은 정지용이 처한 현실이 그를 산문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지용 수필은 일종의 댄디이즘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전래되어 오던 수필의 범주에서 벗어나고픈 수필의 변주곡을 연주한 셈이다. 

정지용 수필의 변주곡은 시론(時論)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과 자연을 대상으로 그것을 수필화한 것과는 달리 보들레르의 ‘댄디’에 해당하는 ‘자연에의 체계적인 반발’을 시도하고 있다. 자연에의 반발이 의미하는 정지용 수필의 해방 후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 지향점을 찾는 작업으로의 노력으로 그는 시론(時論)이라는 변주곡을 연주하게 된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에 정지용이 중수필적 성격을 띤 시론(時論)을 주로 발표하게 된 것은 시대적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물이다. 정지용의 시론도 이 현실의 강력한 반영물이다. 일제강점기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해방 직후는 일제강점하의 식민 잔재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 문화 건설을 위한 노력이 활발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해방 직후 조직 활동을 전개해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좌익 문학가 동맹 측이었다. 한때 이들은 전 문단을 석권하는 듯하면서, 공산당의 지령으로 문학을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한편, 민족진영은 순수 문학을 주장하여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이에 대항하였다. 이렇게 해방 직후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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