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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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1)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1.02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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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 끝에 내 방에서 차 한 잔 대접하는 모양새를 갖추어 만나면 상호 어색함이 없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원장과 협의할 일이 있을 때면 전화를 해서 “원장님, 제 방에서 따뜻한 차 한 잔 하실까요?”하면 원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학장실로 와서 내가 준비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 업무적인 일을 얘기하면 좋은 분위기에서 어렵지 않게 내가 요청하는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1, 2, 3 의료부장들과 임상 과장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필요시 전화하면 학장실로 와서 대화를 나누고 갔고, 나중에는 원장도, 의료부장들도 오히려 내게 할 말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내 방을 찾아오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1년 정도 지나면서 내가 우려했던 학교와 병원 간, 학장과 원장 간의 관계는 전보다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원장은 심지어 병원 간호실장의 인선 문제도 나와 상의해서 인사를 하는 등 매사 상호 존중하고 협력적으로 바뀌어 갔다.

간호실장은 종종 내방에 들러서 “학장님 덕분에 병원 간호부와 간호사의 위상도 올라가고 의사, 간호사들도 과거보다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좋아했다. 우리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학장이 된 후에는 교수들이 임상 실습 지도를 나가면 의사들 태도가 많이 달라졌고, 이제는 의사들이 더 친절하고 공손한 자세로 바뀌는 등 긍정적 변화를 보여 기분이 좋다고들 했다. 내가 바라던 바가 간호실장 과 우리 교수들의 반응을 통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우리 간호의 위상과 간호인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 곧 리더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어왔던 나로서는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세상살이가 서로 알량한 재주를 겨루며 아등바등 밑도 끝도 없는 싸움을 하며 지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간다면 싸움 없이 재미난 세상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만사 자기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국내·외 최초로 개발한 
호주 1년 학사학위 프로그램

학장이 된 후 간호대학의 정체성을 살리고 학교교육의 수월성을 높혀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 결국, 학교 비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고, 여기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NMC 대학이 4년제 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제약이 아주 많았다. 일단 연구중심대학이 아닌 실용학문 대학으로서, 우리 대학의 학제와 부합하는 한도에서 우리 고유의 최대공약수를 개발하는 게 학교가 살길이라고 판단했다.

2000년 학장으로 취임할 당시는 아직도 IMF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라서, 간호사 취업률이 저조한 상태였다. 98년 IMF 사태 이후 99년에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춰 나는 이미 NCLEX-RN(미국 간호사 면허 취득 과정)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대학에 개설하고, 교육부 첫 재정지원금 4억 원을 시작으로 2년 연속 받고 있었다. 지방대학의 취업률 제고를 위해서도 IMF 위기 상황에서 국내 간 호사 취업률이 43%를 밑도는 상태였기에 그 활로는 해외 취업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으로 개발한 NCLEX-RN 프로그램을 국립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맞게 전국 간호대학에 무료로 배포 하도록 했다. 학생과 간호사들이 미국 간호사면허 취득을 통해 국내·외 취업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 대학의 이 러한 선도적 역할에 따라 전국 간호사의 해외 취업 창구는 자연스럽게 NMC가 되었다. 

2001년 나는 호주의 CQU(Central Queensland University)의 CEO 마크 스키너를 만나 한국 간호사들이 호주대학교 학사학위 취득 후 호주에 취업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호주는 각 학문 분야별로 대학의 수업기간이 3년 또는 4년으로 학사학위를 주는 나라이다. 간호학과는 3년으로 학사학위가 수여된다. 스키너 회장은 우리 간호사들이 호주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여 취업하기에는 영어가 미숙하므로, 2학년에 편입학하여 2년 과정을 이수한 후 학사학위를 받고 호주 간호사면허를 취득한 후 취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2년이란 수학 기간은 합리적이지 못하니, 1년 과정 이수 후 학사학위를 받고 취업과 연계하는 코스를 제안하며 설득했다. “우선 우리나라 간호대학은 3년제와 4년제인데, 우리는 4년제 졸업자는 학사학위를 주고, 3년제 졸업자는 학위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호주는 3년제 단일학제에서 간호학사 학위를 주므로 일단 수업연한이 3년으로 같은 것은 사실이다. NCLEX 과정을 마친 간호사들은 한국과 미국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자로서 병원 임상경력이 많아 간호기술로는 어느 나라 간호사도 능가하는 수준이다. 단 영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므로, 1년 수학 기간에 영어를 별도로 공부시키면 유능한 호주 간호사 면허 소지자가 될 수 있다. 같은 3년제인데 2년 과정을 더 밟아야 학사학위를 주는 것은 너무 낭비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이 같은 논리로 두세 번 만나 논의하고 설득하고, CQU 본부와의 조율을 거쳐 드디어 호주의 대학에서 1년만 공부하면 호주 대학 학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면허를 취득하여 취업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성사되었다. 나는 CQU를 방문하여 학교시설과 실습병원 등을 둘러본 후 CQU 총장과 MOU를 체결함으로써 한국 간호사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대학간 공동 프로그램을 통해 호주병원에 취업의 길을 여는 쾌거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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