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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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1.0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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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해어화(解語花)
「일편낙토(一片樂土)」에서 소율과 연희의 길을 생각하며

“미치도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 “그 노래가 내 것이어야 했다” 잘 다듬어진 소설 한 권 읽고 싶어 서점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마음에 꼭 맞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극장을 서성거리다 만난 영화. 

‘해어화(解語花)’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가리켜 이르던 말에서 유래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른다고 한다. 달리 ‘기생(妓生)’이라 말하기도 한다.

1943년 기생학교 ‘대성권번’에서 소율과 연희가 친구가 된다. 소율 오라버니로 등장하는 윤우는 소율에게 조선의 소리를 작곡해 주려했다. 그러나 우연히 연희의 소리를 듣게 된다. 윤우는 연희에게 ‘조선의 마음’이라는 레코드를 취입하게 만든다.

기생을 어머니로 둔 소율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연희는 윤우와 조선의 마음을 두고 갈등을 일으킨다. 조선 하층민의 한을 그리고자한 윤우를 사랑했던 소율은 친구 연희에게 사랑과 조선의 마음을 빼앗긴다. 그의 전부였던 것들을 빼앗긴 소율은 일본인 경무국장을 이용해 놓쳐버렸던 것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연희와 윤우는 소율이 원하던 것들을 뒤로하고 그녀의 곁을 떠났다.

1991년 대성권번 터에서 포크레인 작업 중 사라졌던 ‘조선의 마음’이라는 레코드가 발견되고 복원에 성공한다. 마지막 기생 소율은 방송국에서 ‘조선의 마음’을 불렀던 연희를 자칭한다. 이후 소율의 레코드판 ‘사랑, 거짓말’은 윤우와 소율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진솔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소율은 숨겨진 기생이나 마지막 기생이 아니라 인간이면 보통 겪게 되는 질투와 바람과 갈망을 지닌 사람이다. 친구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연인도 마지막까지 챙겨야하는 주변에서 봄직한 여인이었다. 

해방을 맞이하며 대성권번이 민족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그들에 의해 권번은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소율은 ‘조선의 마음’을 갖고,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은 윤우에 대한 사랑과 조선의 소리를 지키고자 했던 진정한 민족성이었음을 반증하는 좋은 자료가 아닐까.

정지용은 1938년 김영랑, 김현구와 함께 추자도를 지나 제주도를 보며 갑판 위로 뛰어다니며 히살댔다. 소율과 연희가 권번에서 만나 히살대듯이 그들도 배를 타고 제주도를 향해 가며 같은 시대를 지났다. 그렇게 그들은 일제강점기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팍팍한 세월을 건넜다. 모처럼 비가 지나간 37번 국도를 앰프가 터질 것 같은 음량으로 “길을 걸었지·····.”라는 대중가요를 들었다. 

일제강점기, 그들은 인생과 사랑과 민족이 어우러져 선택하지 않았던 세월을 건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을 겪고 목숨을 잃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기억해내며 이 글을 쓴다.

가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만들어지지 않는 먹먹함과 나는 마주한다. 연희와 소율, 영랑과 현구, 그리고 지용 선생과 내가 걸었던 길과 걸어야할 나머지 길을 생각한다.  

12. 무사경 박수 첨시니? 
「귀거래(歸去來)」에서 장난을 치던 해녀와 소년은 없고

해녀가 없다.

소년도 없다. 

정지용과 함께 제주에 갔던 영랑과 현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우리는 이들의 이름과 작품을 통해 그들을 기억해낼 뿐이다.

1938년 「남유다도해기」를 집필하며 강진, 목포를 거쳐 제주도에 이른 정지용 일행은 “백록담에서 곱비도 없이 유유자적하는 목우들과 함께 마시며 한나절 놀았다.”라고 했다. 이들은 ‘암고란(巖高蘭) 열매의 달고 신맛이 입에 고이고, 배낭을 베고 누워 해풍을 쏘이며, 꾀꼬리며 휘파람새며 이름도 모를 진기한 새들이 지용의 귀를 소란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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