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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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1.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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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무사경 박수 첨시니? 
「귀거래(歸去來)」에서 장난을 치던 해녀와 소년은 없고

해녀가 없다. 소년도 없다. 

  정지용과 함께 제주에 갔던 영랑과 현구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우리는 이들의 이름과 작품을 통해 그들을 기억해낼 뿐이다.

  1938년 「남유다도해기」를 집필하며 강진, 목포를 거쳐 제주도에 이른 정지용 일행은 “백록담에서 곱비도 없이 유유자적하는 목우들과 함께 마시며 한나절 놀았다.”라고 했다. 이들은 ‘암고란(巖高蘭) 열매의 달고 신맛이 입에 고이고, 배낭을 베고 누워 해풍을 쏘이며, 꾀꼬리며 휘파람새며 이름도 모를 진기한 새들이 지용의 귀를 소란하게 했다’고 한다. 

  암고란 열매. 이 열매는 진시황과 관련이 있다. ‘만리장성 축조’, ‘아방궁’, ‘분서갱유’ 등으로 잘 알려진 진시황은 500명의 선남선녀를 선발하여 ‘서불(西福)’이라는 신하의 인솔하에 불로초를 찾아 나서게 한다. 2300여 년 전 이 일행은 제주도에 도착한다. 불로초를 구해 돌아가는 길에 정방폭포 절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고 새기고 돌아간다. 이는 ‘서불이 돌아간 포구’라는 의미로 ‘서귀포’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알려졌다. 이때 불로초 선단이 구해간 약재가 암고란 열매라고 전하며 정방폭포 옆에 ‘서불 전시관’을 건립하고 2005년부터 서귀포시는 ‘불로초 축제’를 열고 있다.

그 후 암고란 열매를 먹었음직한 진시황은 마흔 아홉에 천하순행 길에서 객사하고 만다. 지금은 마흔 아홉이면 청년이지만 그때는 장수한 것이란다. 암고란 열매의 덕인지 나는 모르겠다.
  정지용 일행은 “호-이”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청각, 전복, 소라 등을 움켜쥐고 나오는 16~17세의 소녀 해녀들을 구경한다. 일 전(錢)을 주고 해녀가 돌멩이로 까주는 꾸정이를 먹고 소녀의 고은 대접에 감사한다. 

  소년이 소녀의 두름박을 치고 장난질을 하고 달아난다. 

  소녀는 소년의 등짝을 후려치며 “이놈의 새끼 무사경 햄시니!”라고 소리쳐 정지용 일행은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그랬더니 소녀는 소년에게서 두름박을 뺏어 끼고 동실거리며 “무사경 박수 첨시니?”라고 내뱉고 가버린다. 물에서는 소년이 소녀의 적수가 될 수 없다. 

  2016년 1월 1일.한라산에 오르기 위해 한라산 주차장으로 달렸다. 주차장을 1km쯤 남겨두고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쉽게 겪는 교통혼잡과 주차난이 여기도 비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차는 가고 서기를 반복하며 우리를 지치게 하였다. 주차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오르막길에서 우리 차는 앞 차와 부딪쳤다. 사고 수습을 하느라 지체를 하였다. 뒤처리가 끝나니 정오가 되었다. 그래도 한라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오르려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한라산은 키 작은 관음죽이 성하였다. 큰 나무 사이로 잔디처럼 퍼져있는 관음죽은 장관이었다. 언뜻 보면 삼양초등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관음죽이 펼쳐진 한라산에 뛰어들어 학생들과 축구를 한 판 벌이고 싶어졌다. 

  해가 뉘엿거렸다. 과제에 치여 산에 같이 오르지 못하고 주차장 관리소에서 머물며 과제를 하고 있는 큰아들 재홍이가 생각났다. 촌음을 다투며 제주도 한라산까지 와서도 과제를 서둘러야 하는 요즈음 대학생들의 현실이 백록담에 마저 오르지 못한 에미의 아쉬움과 겹친다. 아들은 과제에 치어 한라산에 와서도 한라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쉽고, 나는 한라산을 끝까지 다 오르지 못하여 안타깝다. 이래저래 우울하였던 한라산 산행이었다. 

  남편과 재원이와 함께 하산을 서둘렀다. 더 늦어 조난을 당하는 위태로움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천 년을 살고자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이나 한국 현대문학의 큰 봉오리였던 정지용은 우연인지 모두 마흔 아홉의 짧은 생을 마쳤다.

  더 이상 제주도에서는 정지용이 보았다는 16~17세의 소녀 해녀와 소녀에게 장난을 치던 소년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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