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여명기 선각자 육정수(陸定修)(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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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명기 선각자 육정수(陸定修)(1)
  •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23.11.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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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가이며 YMCA에 헌신한 애국자

육정수(陸定修) 선생의 아호는 삼전(三田)이며 본관은 옥천 육씨(沃川陸氏)이다. 1885년 2월 25일, 충청도 청산현 청서면 두릉리에서 오랫동안 대대로 세거해 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0년대 초기에 『혈의 누』를 쓴 이인직과 함께 하와이 이민사를 다룬  신소설 『송뢰금』 등을 쓴 신소설가이며 근대의 선각자로 총독부의 유혹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오직 YMCA 운동에 헌신한 애국자이시다.

그는 양할아버지이며 개화 지식인으로 성리학자인 육용정(陸用鼎) 저술가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으며 아버지는 김옥균과 함께 한 개화파의 육종윤(陸鍾允) 선생이다.

육영수(陸英修, 1925~1974) 여사의 사촌오빠인 그는 1896년 열두 살 때  서울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마침 그때 독립협회가 창설되었으므로 학당 안에서 서재필(徐載弼), 윤치호(尹致昊) 선생으로부터 신문학과 의회, 헌법, 만국공법(萬國公法), 영어를 배웠다. 그 당시 배제학당 동창생으로는 이승만, 신흥우, 여운형, 정교, 양홍묵, 오긍선 등 명사들이 많았는데, 이들로 학교 안에 협성회(協成會)가 조직되었을 때 육정수 선생은 창설회원으로 활약했다.
YMCA(기독교 청년회) 운동에 그가 처음으로 가담한 것은 1901년(광무 5년) 배제학당 대학부 학생으로 있을 때부터였다. 

때마침 미국 YMCA로부터 파견된 질레트(P. L. Gillett, 吉禮泰)가 배재학당 안에 학술청년회 즉 학생YMCA를 조직하게 되었는데, 그 때 육정수 선생은 학술청년회의 사찰을 맡았고 회장은 민찬호 선생이었다.

육정수 선생은 처음에는 대한제국 내부 주사를 지냈고 해동은행 주역도 역임했다. 이후 중앙고보와 배재고보 등에서 교사로 영어와 역사, 지리 등도 가르쳤다. 

육정수 선생은 1906년((광무 10년)에 정식으로 개관된 YMCA 학관 부학감 뿐만 아니라 친접부(회원부)의 위원으로 활약하여 회원모집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유신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에게 매수당한 회원들이 YMCA 총회에서 YMCA 이사 자리를 점령하려 할 때, 선생은 김창제, 김인식, 최성모 등과 정회원 조사위원으로 불법 회원들을 적발했으며 그 결과 유신회 일파의 흉계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와다나베 등 일본인과 유일선(柳一宣) 등 유신회 간부들을 이사로 뽑자던 일제의 흉계를 막고 YMCA를 정상화 할 수 있었다.

1914년 개성(開城)에서, 서울YMCA(당시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YMCA 연맹체인 조선기독교청년회 전국연합회가 조직될 때에 서울 중앙YMCA의 16명 총대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1916년 YMCA 학관(學官)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10년 근속 표창을 받았다. 육정수 선생은 미국인 명사 초청 강연을 할 때에는 항상 통역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1916년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 스타(Star) 박사가 와서 강연할 때 통역을 맡았다. 그는 스타 박사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약한 민족이 반드시 강한 민족에게 완전히 삼킴을 당한 예는 없습니다. 큰 고목이 거꾸러졌지만, 그 뿌리에서 싹이 나오는 것처럼 약한 민족은 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소생할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약한 민족은 칼을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라고 통역을 해서, 그 당시 총독부의 무단 헌병정치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을 감동시키며 한국 독립의 자존의식을 일깨웠다. 일제 말기에는 서무부 간사를 맡은 것은 일제 말기 YMCA 재산을 사수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일념에서였다.

8.15 해방 후 대다수 YMCA 지도자들은 새 나라를 세우는 일에 분주하여 YMCA를 떠났지만, 선생은 그 모든 유혹과 명예를 물리치고 서울YMCA 부총무로 취임하여 재건에 헌신했다. 
그러다가 1949년 4월 4일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육정수 선생은 일생을 YMCA에 바친 열렬한 애국자이며 훌륭한 YMCA 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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