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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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2.0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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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있는 대로 다 가져와 
「오룡배(五龍背) 3」의 정지용과 길진섭의 쓸쓸한 기차가 되어

온천장 호텔에 예약을 하지 않았고 취락관은 폐관을 하였다. 정지용과 길진섭은 병자들 가족이 주로 찾는 보양관에 머물기로 하였다. 조선 사람 두 명이 찾아들자 복강이나 박다 근처의 사투리를 쓰는 몸이 가늘고 파리한 여급이 있다. 이 여인은 별로 반기는 기색도 인도를 할 의양도 없어 보였다. 다다미에 스팀이 후끈 달아오른 방에 들어 외투를 내동댕이친다. 비쩍 마른 여급은 마땅히 있어야 할 서비스는커녕 냉냉하고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런 빳빳함에 견디기 힘든 정지용은 초인종을 눌러 여급을 부른다. “느집에 술 있니?”, “있지라우.”, “술이면 무슨 술이야?”, “술이면 술이지 무슨 술이 있는가라우?”, “무엇이 어째! 술에도 종류가 있지!”, “일본주면 그만 아닌가라오?”, “일본 주에도 몇 십종이 있지 않으냐!”라며 정초에 여급의 건방짐에 신경전을 벌인다. “맥주 가져오느라!”, “몇 병인가라오?”, “있는 대로 다 가져 와!”라고 여급에게 정지용은 호통을 친다. 꼬장꼬장한 그의 성격이 이 대목에서도 썩 잘 느껴진다. 호통 덕분인지 “훨석 몸세가 부드러워져 맥주 세 병이 나수어 왔다.”고 하였다. “센뻬이를 가져오기에도 온천장 거리에까지 나갔다 오는 모양이기에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더니 고맙다고 절한다.”라며 “눈갓에는 눈물자죽인지도 몰라 젖은 대로 있는가싶다.”라고 서술하며 여급에게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호감을 주는 것도 아닌 불그죽죽한 동백꽃 무늬가 쓸쓸해 보이는 듬식듬식한 옷을 입은 여급. 이를 보며 정지용은 여인의 체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동정어린 해석을 내리기도 하였다. 

정지용 일행은 오룡배 추위에 차가운 맥주로 화풀이를 하고 온천탕에 갔다. 수조는 좁고 뻐쩍 마른 사람 둘이 개구리처럼 쭈그리고 있다. 몸을 가실 물도 수건도 비누도 없다. 

정지용은 여급의 버릇을 호령으로 고쳤으나 박다에서 온 여자나 의주에서 온 농촌 청년이나 친절한 인사 등을 나눔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은 만주에까지 지고 온 가난과 없어서 그런 것이니 징치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짧은 도데라를 입고 심상(尋常) 소학생 같다며 스스로를 조소(嘲笑)하던 길진섭은 나무도 풀도 없는 안동현 유일의 등산 코스가 있는 석산을 그린다. 철판이 우그러지는 소리를 내는 바람이 지나고 실큰한 만주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리창 앞에서 산을 그리는 길진섭의 키가 쓸쓸해 보인다. 스팀 옆에서 거품도 없이 절로 찬 맥주를 마시며 이 다다미방이 원고 쓰기에 좋은 방이라고 정지용은 말한다.

지난해 9월, 나는 길진섭이 화판에 옮겼다던 석산에 올랐다.

육 기자는 오룡배에서 어제 저녁에 마신 맥주가 마중 나와 맥을 못 춘다. 나는 배탈이 났다. 깎아지른 듯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계절로 9월은 가을인 양하지만 한여름 중앙에 서있는 것만 같았다. 

능선을 타고 산에 오르니 오룡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압록강도 손에 닿을듯하다. 정지용이 길진섭과 쓸쓸히 기차를 타고 들어섰을 길을 눈으로 가늠하여 보았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하산을 하고 위화도가 있는 압록강으로 갔다. 

북한 주민들이 지는 해를 붙들고 위화도에 있는 전답에서 일을 마치고 쪽배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한가롭게 압록강 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참게가 많이 잡힌다고 가이드가 설명하였다. 그래서인지 참게를 잡는 무리들이 줄을 지어 있다. 이렇게 잡힌 참게를 가게에서 튀겨 팔고 있었다. 말이 가게지 엉성하게 비닐로 덮어 놓은 작은 비닐하우스 같았다.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냄새는 언제 맡아도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패랭이꽃처럼 가늘고 쓸쓸한 아이들이 부모님이 장사하는 가게 옆에서 뛰고, 달리고 장난을 하며 놀고 있다. 정지용은 박다에서 온 쓸쓸한 여급이 열탕이 솟는 오룡배 다다미 방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좋겠다며 찬 맥주도 맛이 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약한 향신료를 뿌린 참게 튀김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냄새로 울렁거리는 속을 안주 없는 맥주로 진정시킬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겨울이면 유리 바깥 추위가 뿌우연 토우(土雨)같이 달린다는 이곳은 여름에는 참게 튀김 냄새가 진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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