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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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기록
  • 이진솔 기자
  • 승인 2023.12.0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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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첫눈이 내렸다. 햇살에 금방 녹아버린 덕분에 눈을 치울 수고도 없었던 첫눈. 그런 첫눈을 등지고 아버지는 나무를 긁어모아 마당 한구석에 불을 피우기 시작하신다. 어머니는 부엌과 아궁이를 바지런히 오가시며 육해공을 골고루 담은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시고 언니와 나는 뒤늦게 일어나 수저를 놓고 상을 차린다. 상 한쪽엔 강아지들이 주인보다 앞장서 자리를 잡고 고기 조각이 떨어질까 꼬리를 흔든다. 밭 한가운데 자리 잡고 서리 맞아가며 자란 배추부터 농사지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 굴까지 듬뿍 들어간 김장김치에 가마솥으로 푹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과 등뼈, 닭볶음탕까지 한 상 가득 채워진다.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는 하루가 멀다고 마당에 불이 피워진다. 

올겨울엔 무엇을 구워 먹어볼까, 이사 오기 전 자주 가던 포장마차를 떠올리며 택배로 시켜 본 메추리부터 닭염통꼬치, 무난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도 좋고 입이 심심하면 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어도 좋다. 월급이 들어온 날이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괜히 소고기를 사보기도 한다. 구울 고기가 없는 날이면 냉장고 구석에서 천 원짜리 어묵 한 봉 뜯어 집에 나뒹구는 나무젓가락에 끼우고 햇무 우린 육수에 담가버리면 담소를 나눌 핑곗거리가 생겨난다. 그렇게 오늘도 다른 핑계로 온 가족이 아궁이 앞에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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