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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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2.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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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서)

나에게도 이십대의 두 아들이 있다. 
 두 아들에게 나도 정약용처럼 이러한 부탁을 하고 싶다. 
 군입대를 앞 둔 아들이 친구를 만난다며 나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날,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아들의 방을 들여다 볼 때, 지나치게 고기 먹기를 좋아하는 눈치를 보일 때, 불규칙하게 시간을 죽이며 허송세월을 보낼 때면 정약용처럼 훈육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잔소리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참고 만다. 편지대신 가끔 모바일 폰에 문자를 남겨 놓는다.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켜볼 뿐이다.  
  경주에서 5.8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역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지진이란다. 부상자가 발생하고 건물에 금이 갔다. 고등학교 2학년 고전문학을 수업하는데 5.8 강도의 지진이 느껴졌다. 의자가 흔들리고 건물이 진동하였다. 학생들과 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불안함을 감추고 계속 수업을 하였다. 이럴 땐 뭐라고 가르쳐야할까? 
 추석을 지난 다음날부터 사흘 내내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3. 청계야! 비 온다! 
「부산(釜山) 1」은 반가운 비가 내리고 

 부산에 도착한 정지용 일행은 이중다다미 육조방의 삼면을 열어놓고 사랑가, 이별가는 경상도 색시 목청을 걸러 나와야 제격이라며 술을 마신다. 싱싱한 전복, 병어, 도미, 민어회에 맑은 담지국에 “내일부터 안 먹는다. 오늘은 마시자!”라며 호기롭게 술을 마신다. 
 이들은 어찌 드러누웠는지 기억에 없고 술이 깨자 가야금 소리처럼  빗소리가 토드락 동당거린다. 이 소리를 들은 정지용은 “청계야! 청계야! 비 온다! 비 온다!”며 반갑게 비를 맞이한다. 
 청계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오사카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동양화가 정종여(1914~1984년)를 가리킨다. 그는 해방 이후 성신여자중학교, 배재중학교, 부산 대광중학교에서 재직하였으며 1950년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해금되어 정지용과 같이 우리에게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인연은 참 기묘하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즐거웠던 이들은 같은 해에 청계는 월북, 정지용은 행방이 묘연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들 같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로 운명이 결정된 이들을 생각하니 창밖의 빗소리마저 부질없이 슬픈 가락으로 울려온다.
 정종여는 월북할 때 남한에 두고 간 자녀들을 그리며 ‘참새’라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살다가며 자식을 그리워하였을 정종여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2015년 남북분단 70년을 맞아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남북미술전이 세계로 평화 나눔 문화축전 조직위원회 주최로 서울 메트로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 미술전은 남북한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남북미술전이었다. 이는 110만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북한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하고 한민족의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담아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을 기대하며 열렸다. 이때 정종여의 ‘신창에서’, ‘목란꽃’, ‘새우’가 전시되었다. 
 ‘새우’(69×44cm)는 8마리의 새우가 화판 중앙을 향해 모여드는 형상으로 왼쪽 아래에 낙관이 찍혀있다. ‘신창에서’(92×45cm)는 대나무 낚싯대가 길게 누워있고 물고기가 하나는 어망에 다른 한 마리는 바닥에 누워있으며 왼쪽 위에 낙관이 찍혀있다. ‘목란꽃’(55×45cm)은 위쪽 중앙에 활짝 핀 꽃 한 송이 오른쪽 약간 아래에 망울 부푼 꽃송이가 곧이어 피어날듯하다. 꽃 크기에 비해 잎이 크고 튼튼한 것이 이색적이다. 낙관은 좌측 중앙 아래쪽에 찍혀있다.
 그는 “작가자신의 주관을 회화화하자.”, “나는 참다운 인간성을 배우려 노력해야 하겠고, 인간의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야만 나의 미술도 참다운 것이 될 수 있다고 언제든지 생각한다.”라며 자유성과 인간을 먼저 파악해야 참다운 작품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미술창작품에 적용하며 그는 1945~1950년 5년 동안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특히 ‘위창 선생 팔십오 세상(오세창 선생 초상)’은 한복 두루마기까지 잘 차려입은 오세창 선생의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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