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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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1.25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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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중년이 될 때쯤 삶을 노래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때론 눈멀고 귀먹어 살아온 삶에 지표가 되었던 문학! 봄날 따스한 햇볕 같기도, 여름날 화살촉 같기도, 가을날 황금들녘 같기도, 겨울날 북풍한설로 다가왔던 문학은 내 삶의 그늘 뒤란에 찬란한 빛과 같았다. 장인이 한 작품을 위해 그의 삶을 녹여내듯 나의 시간을 졸여낸 지도 어언 10여 년이 되었다. 가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생각에 잠길 때면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가 생각날 때가 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한다. 말인즉슨 남산에 올라가서 돌을 던지면 그 돌에 맞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인이 많다는 뜻이다. 그중 나도 한 사람일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크게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고 위안이 된다면, 자아 성취를 위해 저녁노을처럼 곱게 물들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지 않을까? 

 이순에 접어든 황혼의 길목. 한 해의 끝자락에서 쓸데없는 욕심은 하나둘 버려가며 남은 시간. 만추의 들녘처럼 노릇노릇 익어가 보리라. 


중년의 초딩들
올갱이 축제

 땡볕이 불화살처럼 따갑게 내리꽂는 8월 중순, 전국이 불덩이로 달아올랐다. 108년 만의 역대 최고치 폭염이라고 한다. 연일 푹푹 찌는 열대야 속으로 모든 만물이 몸살을 앓고 타들어 가는듯하다. 한질금의 소나기가 간절한 오후다. 그 폭염 속으로 ‘중년의 초딩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상기된 얼굴로 이야깃주머니를 풀어놓는다. 

 며칠 전 야유회 겸 올갱이축제 1박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이다. 사계절을 나누어 봄에는 동창회, 여름에는 올갱이축제, 가을에는 소풍, 겨울에는 송년회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그 이름하여 올갱이축제가 있는 날이다. 다들 해맑게 웃는 그들의 얼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우묵우묵하고 하회탈을 닮아가고 있었다. 무서리가 성성한 머리도 염색약에 물들어 있다. 어린 시절 운동장과 골목을 달음질치던 개구쟁이들은 간데없다.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간 이야기 속의 중년 아이들의 얼굴은 알알이 익어가는 청포도 빛이다. 더위에 지쳐있던 나뭇잎도 잠잠했던 금강물도 돌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색소폰을 부는 아이, 기타를 치는 아이, “아아 마이크 시험 중” 하하 호호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청마리 금강 변 민박의 포도 터널은 싱그러움을 더해가고 있다. 기승을 부리던 불볕더위도 주춤거린다. 아이들의 물장난이 시작되었다. 물벼락을 맞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쫓고 쫓기는 사이에 여름이 가고 있었다.

 그리움을 안고 전국에서 달려온 친구들을 위해 고향의 지킴이들과 임원진이 구슬땀을 흘렸다. 축제 명칭답게 올갱이가 빠질 수가 없다. 나와 친구는 올갱이의 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수돗가 시멘트 바닥에 흰 목장갑을 끼고 빨래 비비듯 박박 문질렀다. 50여 명이 먹을 양이기에 20kg도 넘는 많은 양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 물때를 빼고 또 뺐다. 벙어리처럼 꽉 다문 올갱이의 저린 몸뚱이에서 파란 윤기가 뽀드득뽀드득 빠져나왔다. 골골이 패인 온몸이 드러났다. 우리의 삶의 흔적도 지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친구의 눈가에 진 주름살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물기 빠진 올갱이는 진한 육수를 내기 위해 펄펄 끓는 물에 넣고 푸욱 고아냈다. 잘 우러나 고향의 맛! 그 구수한 국물 맛은 가슴속까지 시원했다. 숯불에 구워내 고기의 맛도 완숙해가는 우리의 인생처럼 맛깔스럽고 노릇노릇했다.

 그렇게 잘 익은 과일 맛처럼 우리들의 우정은 깊어만 가는 밤처럼 깊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달콤하고 구수했던 짭짤한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성싶다. 친구들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그 맛을 어찌 표현하랴. 어느 작가는 ‘음식은 마음의 언어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음식과 그릇에 비유했다. 우리는 어떠한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여 어떤 그릇에 담아낼지는 우리 모두 각자의 몫인 것 같다. 한여름 밤의 열기만큼 정성을 다해준 친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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