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 사위, 구암 김연국 동학 대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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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사위, 구암 김연국 동학 대접주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4.02.0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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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신도안서 상제교 창도, 해월 가족 돌봐 

 구암 김연국(金演局) 선생은 동학과 천도교, 시천교 주요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상제교(上帝敎)를 창건한 교주로 1857년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김연국 상제교 교주는 자는 치구(致九)이며 호는 구암(龜菴)으로 본관은 강릉 김씨(江陵金氏)다.

  최제우 교주는 1863년 8월 14일 해월선사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동학 교주로 삼고 1864년에 참형을 받아 최제우 교주는 순교했다. 그 후 동학도들은 조선 정부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자,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의 산간 지역인 강원도와 충북 북부의 단양, 영춘 지역에 숨어들어 비밀리 포교 활동을 해서 동학 교단을 1870년에 재건하였다. 그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김연국 선생은 최시형 교주를 만나 1872년 동학에 입도한 뒤에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의 직제자가 되어 그를 수행하였다.

 1893년 전후하여 최시형 교주는 보은 대접주이자, 대도소 소장인 김연국 집인 청산현 포전리에 거주하며 보은군 내속리면(현재: 장안면) 장내리 동학 대도소를 오가며 동학교도를 포교하고 지도하였다. 옥천군 청성면 포전리 상포마을과 청산 문바위, 경상도 북서부 지역을 전전하며 피신하고 거주할 때 최 교주의 가솔을 보살폈다. 또 1893년 3월에 상포마을 김연국 집에서 최시형 교주를 비롯한 의암 손병희, 이관영, 권병덕, 임정준, 이원팔 등 동학 지휘부가 모여서 최제우 교주 ≪조난예식≫을 치렀다. 이날 이곳에서 ≪보은취회≫를 3월 10일 개최키로 결정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청성포전리 교주 조난예식, 보은취회 결정 
 
청산현 포전리(현재: 옥천 청성면 거포리 상포마을) 김연국 집에서 동학의 최고수뇌부가 회합하여 주요한 결정을 하는 등 잠행 근거지였다. 보은 취회지로 전국의 수많은 동학 지도자들과 교도들이 보은 장내리로 집결하여 최시형 교주의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다. 이 때문에 장내리 일대가 너무 번잡하고 관군에 노출된 장내리에 대도소를 그대로 둔 채 장내리에서 남쪽으로 20여 리 떨어진 첩첩이 산으로 둘러쳐진 산간 협곡에 위치한 옥천군 청성면 거포리 포전리(당시 청산현 서면 포전리) 사위 김연국 대접주 집에 피신하곤 했다.

 동학 당시 포전리는 청산현 소속으로 현재 옥천군 청성면 거포리 포전마을이다. 포전(浦田)은 냇가에 갯가 흙이 쌓여 만들어진 논 즉 개밭을 뜻하며 포전리는 바로 마을 앞에 장연천이 흘러 범람으로 논밭이 개흙으로 이루어졌다. 포전리는 비록 첩첩산중이지만 주변에 사행곡을 이루는 금강과 보청천이 흐르고 소백산맥의 중산간 지역으로 상주와 무주, 옥천, 금산, 공주, 보은, 청주, 충주 방면으로 사통팔달 교통요지에 위치하여 동학수뇌부가 포덕과 잠행하기에 적절한 곳이다. 1891년 5월 최시형은 아들 최덕기와 장한주 등을 대동하고 옥천 김연국 집을 거쳐 전라도로 항했다는 기록이 있어 1891년 전부터 포전리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옥천향토전시관 1층에 전시하고 있는 구암 김연국 선생의 『회상 영적실기』는 동학 창시자 최제우 수운선사와 최시형 교주에 대한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려 수록한 책이다.

최시형 교주, 그림자처럼 수행
 
김연국 동학 대접주는 1894년 9월 18일 기포령 전후 청산 한곡리 문암에서 최시형 교주의 가솔들과 함께 살면서 최시형 교주와 함께 동학전쟁 때 수뇌부로 활동했다. 1898년 해월이 강원도 정선에서 옥천 사람 송경인 우체주사에게 체포될 때까지 그림자처럼 항상 최 교주를 따랐다. 옥천 청산 출신 동요작가 정순철의 어머니이며 최 교주 딸인 최윤은 1930년 딸 정순열을 데리고 경주 용담정으로 가기 전에 신도안의 상제교 김연국 교주에게 의탁하기도 했다. 

상제교 교주로 최윤, 손씨부인 의지함 
 
 구암 김연국은 동학 지도자로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았으나, 풀려나 천도교와 일진회를 이끄는 이용구가 만든 시천교 지도자로 활약했다. 1920년대 보은과 옥천에는 시천교 교인 꽤 있었다. 후에 김연국은 상제교를 창도하여 교주가 되었고 계룡산 신도안에 본거지 두고 신앙 대상은 옥황상제이며 천도교와 비슷하나, 사당에 신위를 안치하며 검은 통 모자를 쓴다.
 한편 해월의 딸 최윤은 손병희의 동생 손씨 부인과 함께 형부 김연국 교주는과 큰 의지처가 되었다. 구암 김연국 상제교 교주는 의암(義菴) 손병희 천도교 교주와 송암(松菴) 손천민 선생과 함께 동학 3암(三菴) 중 한 사람이며 1944년 87세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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