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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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4.02.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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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서)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월이는 보자기를 열었다. 보자기에는 조선을 침공하기 위한 해로공략도와 위기발생 시 육상도주로 등의 지리와 지형이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월이는 그 지도에 당항만이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그려 넣었다. 고성읍 수남리 앞바다와 지금은 간척지가 된 소소강을 연결하였다. 즉 통영군, 동해면, 거류면을 섬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후 월이는 보자기를 밀정의 품에 다시 안겨줬다. 

월이가 조작한 지도를 들고 1592년 일본군은 1차 당항포해전을 치렀다. 이순신의 전략에 밀린 일본군은 바다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허사였다. 당항만으로 들어와서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는 지도에는 표시된 해로를 찾았으나 바다는 더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군은 육지에 막혀 전멸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당항포 앞바다 견내량을 일본 밀정을 속였다 하여 ‘속싯개’라는 지명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기생 월이의 기지와 일본 밀정의 어리석은 이야기는 지금도 충무에 전설로 남아 있다고 한다.

10. 겸손한 사당에서 
「통영(統營) 3」은 청마, 두춘의 안내로 충렬사에 가고 

정지용은 청마와 두춘의 안내를 받아 명정리 우물에서 손을 씻고 이를 가시고 충렬사에 간다. 미물과 같이 어리석고 피폐한 불초 후배이기에 서럽다고도 할 수 없는 눈물이 솟았다고 한다. 웬만한 시골 향교보다도 작은 사당에 이순신의 충혼을 모셨다고 너무도 가난한 사당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일행은 분향하고 재배를 하는데 저절로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았다고 하였다.  

지난해 여름 충렬사에 이르니 400년 되었다는 동백나무가 마중을 나왔다. 정지용이 65년 전에 다녀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충렬사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안내 표지판, 정원수, 보도블록과 잔디들이 한여름 태양을 쬐고 있었다. 

1840년 이순신의 8세손 이승권 통제사가 건립하고 현판을 걸었다는 강한루는 정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 누각은 잘 가꾸어진 죽림과 조경수들이 어우러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강한루 왼쪽에는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 명나라 신종이 이순신에게 보내온 팔사품이 전시되어 있다. 팔사품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 수군 도독 진인이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과 빛나는 전공을 신종에게 보고하자 신종이 이순신의 공에 감동하여 보낸 지휘관을 상징하는 8종류의 물품을 이른다. 이는 도독인 1개, 호두렬패 2개, 귀도 2자루, 참도 2자루, 독전기 2폭, 홍소령기 2폭, 남소령기 2폭, 곡나팔 2개로 8종류 15개로 이루어져 있다. 

사제문도 있었다. 사제는 임금이 죽은 신하의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다. 이 사제문은 술과 고기를 위패 앞에 모신 다음 투구와 갑옷을 입은 채로 잔을 올리고 제사하라는 정조 임금의 하사 제문이다. 후세의 임금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이순신 장군 앞에 예를 갖췄다. 나도 자꾸만 머리가 숙여졌다.

충렬사 담장은 작은 돌멩이로 쌓아 담장 머리는 기와로 앙증맞게 정리되어 있다. 나는 이런 돌멩이로 만든 담장을 유독 좋아한다. 정감이 어린다. 마치 어린 시절 고향집 골목에 서 있는 느낌이다. 바람이 한줄기 지나갔다. 등허리가 시원하다. 

외삼문을 지나 숭무당과 경충재가 좌우에 서 있다. 숭무당은 통제영에서 파견한 장교들이 상주하던 곳인데 현재는 회의실과 강의실로 쓰고 있다. 경충재는 충렬서원으로 불리던 강당인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무사하여 지금까지 존속되어 있다. 이순신의 신위가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존속되었으리라. 

“한 개의 목공예품 같은 소박하고 가난하고 아름다운 중문”이라고 정지용이 서술하였던 이곳 중문을 지난다. 내삼문이 나온다. 내삼문 안에는 사당이 있다. 사당의 동쪽에는 동재가 이어 자리하고 있다. 동재는 제관들이 제례를 지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의복을 갖추어 입는 곳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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