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에서 청산까지 신출귀몰, 문태수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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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 청산까지 신출귀몰, 문태수 의병장
  • 전순표 옥천향토전시관장
  • 승인 2024.03.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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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때 문태수(文泰洙, 일명 문태서) 의병장은 13도 연합의병부대의 호남창의대장으로 영호남과 충청지방의 접경지를 신출귀몰, 종횡무진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그는 1880년(고종 17년)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191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본관은 창원 문씨이고. 본명은 문태현이며 별명은 문태서이고 문태수는 한말 의병장 때 불렸던 이름이다.

33년 생애 국권회복 위해 살신성인 

문태수 의병장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 원통사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는 무주 안성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어 9월 하순 전라도 장수로 들어가 그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해 전멸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는 특히 덕유산을 근거지로 영호남, 충청도 등 삼남 일대에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소백산맥 산줄기에 고산준령이 즐비한 충청북도 청산, 옥천, 영동, 무주의 산악을 신출귀몰, 종횡무진 하였다.

13도 연합의병, 호남창의대장 임명

1907년(융희 1년) 9월에 ‘대한관동창의대장 이인영 의병장의 이름으로 전국의 의병부대에 서울 총공격을 위한 격문을 발하였다. 문태수 의병장은 전국의 8도 대표들과 출진하여 호남창의대장에 임명되어서 13도 연합의병부대 일진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인영 총의병대장 아버지의 부친상으로 서울 진격계획이 좌절되자, 의병을 이끌고 본래의 전북 무주 안성 근거지로 복귀하였다.

1908년까지 무주 진안 장수서 활약

1908년(융희 2년) 2월 28일 약 60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무주 주재소를 습격하여 교전 중에 붙잡혔으나,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그리고 그해 4월 10일 신명선(申明善) 의병장 의병진과 합세하여 의병 100명을 인솔하고 전북 장수읍을 습격하였다. 마침 장수주재소 안에는 모두 의병 토벌전에 동원되고 조선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의병들은 거침없이 총과 무기 등을 빼앗은 뒤 학교와 군청, 부속건물, 민가 등 13동을 태우고 무주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이어서 4월 24일 전북 용담군(현재 진안군) 이동면 장전리를 습격하였다. 또 5월 8일에는 남원의 이문성(里文城) 동북방에서 100여 명 의병들은 일본 헌병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해 8월에 충청북도의 영동·청산·옥천 등 산악지로 이동하며 활동하였다.

경부철도 이원역 기습, 헌병들 사살  

문태수 의병은 지리를 잘 아는 박선보 옥천출신 의병의 안내를 받아서 이원역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문태수 의병장은 군수품을 실은 경성(서울)행 야간 화물열차가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에 정거한다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래서 "1909년 10월 29일 밤 10시경 문태수 정예의병 32명은 경부선 이원역을 습격하고 석유통 2개로 역사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또한 문태수 의병의 총격으로 일본인 3명을 부상하였고 일본수송대 헌병들과 교전으로 헌병 3명을 사살하였다. 이와 함께 이원역에 그 당시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 이원역에서200원을 빼앗아 갔고 또 3명을 납치하였다.

옥천 박선보 의병도 참전

문태수 의병이 야간에 이원역을 기습하자, 대전 주둔 일본군 기병대가 급히 출동하여 박선보 옥천 의병 등은 교전 끝에 의병들은 영동 양산-무주 덕유산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옥천 이원역은 대전역-옥천역과 영동역-김천역 중간에 위치한다.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문태수 의병장은 옥천, 청산, 영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며 덕유산을 거점으로 활약하였다. 그 당시 문태수 의병에는 옥천출신 의병들도 참전하였다.

전국 의병 사기 올려, 남한 대토벌전 

문태수 의병이 경부선 이원역을 습격하자, 전국에 의병들에게 사기를 크게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반해 조선 통감부는 서울-부산 간 가장 중요하고 만주, 중국을 침략하는 병참로인 경부선 철도에 대한 경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대대적으로 일본군을 동원하여 지리산과 덕유산 등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의병부데에 대한 남한대토벌전을 벌였다.

그래도 문 의병장은 1909년 11월 이후 무주군 덕유산을 근거지로 금산, 영동, 옥천, 상주, 청주, 보은 등지에서 신출귀몰하였다. 그러나 1911년 8월 밀정이 일본 경찰에 밀고하여 체포되어 옥중에서 자결했다. 정부는 문태수 의병장에게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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