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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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최종회)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2.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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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시인 . 문학박사

향수, 고향 황톳빛 짙은 농촌의 정감을 안겨주는 주옥같은 시로 ‘현대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쉽게 이해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본란은 현대어로 풀어 놓은 시와 해설을 겸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다시 읽는 정지용 시’를 통해 어느 덧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깊이를 느끼게 한다.       <편집자주>

 

해바라기 씨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 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감고 한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 작품 해설

시는 언어예술이고 또 언어로 빚어진다. 우리시는 우리말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명제를 정지용처럼 열렬히 자각하고 실천한 현대 시인은드물다. 그가 구사한 언어는 창의적이고 개성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동시에 잘 드러난다. 위의 시는 어린이도 쉽게 이해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깊이가 느껴지는 시다.

해바라기 씨를 심은 뒤에 그 새싹이 나오는 모습을 동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참새가 날아와 까먹지 않도록 몰래 해바라기 씨를 심고, 누나는 바둑이, 고양이와 함께 흙을 다진다. 저녁엔 이슬이 내리고 아침엔 햇살이 비쳐준다. 그리고 그 바람을 담은 해바라기 새싹이 올라온다. 이 시는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해학적 표현으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아름다운 심성도 느껴진다. 동시의 세계는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근원적인 존재방식이다. 그 방식은 즐기고 누리는 향유이다. 이때 감성은 자신의 내면성을 형성하며 자기 확립을 위한 중요한 정서가 된다. 이것은 이후 삶의 내용을 채우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심적인 역할로 윤리적 실천 의지와 참된 삶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지용 시인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부채질했다. 그러나 그는 꿋꿋하게 시인의 길을 걸었다. 동시童詩에서 키워진 삶의 내용들이 중요하게 작용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해바라기 씨를 심듯, 문학의 씨를 심은 시인. 씨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인 힘, 혹은 신비한 잠재력을 상징한다. 이런 잠재력이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실현되는 경우 그것은 희망을 정당화한다. 이경우 씨는 ‘영원’과 ‘무한’을 상징한다. 그것은 씨가 죽음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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