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故김한주 선생 손자 김시형(52)씨 인터뷰
“할아버지의 희생정신 자식에도 물려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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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故김한주 선생 손자 김시형(52)씨 인터뷰
“할아버지의 희생정신 자식에도 물려주겠습니다”
  • 김나연기자
  • 승인 2017.03.02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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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 신청 어려워 10년 만에 등록… ‘혜택 적지만 마음은 훈훈’
‘일본 헌병대 무차별 발포로 민간인 희생자 많고, 참혹’ 전해 들어

“1919년 4월4일 일본 헌병대의 무차별 발포 속에 청산장터는 말 그대로 피바다로 변해 참혹한 현장이었다.”
독립운동가 故김한주 선생의 손자 김시형(52)씨는 돌아가신 아버지(故김익근)의 생생한 증언을 이었다.
김씨는 “당시 할아버지는 총을 맞고 일본 헌병대에 잡혀 온갖 고문과 협박을 당하고 (당시)공주지방법원 대전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1년3개월 형을선고받아 복역했다”고 밝혔다.
당시 일제치하의 한국 정서는 말 그대로 참혹하며 혼돈의 시기였다.
김씨는 “할아버님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후손들에게 피해가 있으면 안 된다”라며 “광복운동 관련 사진과 모든 자료는 없애야 한다”고 유언 했다고 증언했다.
모든 자료가 불타 없어지고 광복은 이뤄졌다. 정부는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공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도입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11살에 아버지를 잃은 故김익근씨는 유공자를 등록하기 위해 아버지(故김한주)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찾아 헤맸지만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한 보상보다는 아버지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함 이었다.
오랜 세월 지칠 때로 지친 아들 故김익근씨의 소식을 접한 당시 옥천군의회의 이희복 의원은 혹시 청산면사무소에 ‘수형인명부’가 있으니 확인을 해보란 말을 듣고 곧장 달려갔다.
‘수형인명부’를 확인하다 보니 아버지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당시 사건 번호와 같이 김한주 보완법 위반, 형량 1년 3개월.
이후 故김익근씨는 아버지의 공적을 접수,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다.
故김익근씨는 이후 수년간 광복 회원 자격으로 3·1절 관련 행사라면 전국 어디든지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지난2016년 3월 1일 청주에서 열린 제97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고 귀가하던 도중, 차량 안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세상을 떠났다.
아들 김씨는 “저희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기억조차 희미했다고 하셨지만 늘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자손들에게 떳떳한 할아버지로 기억이 남도록 저의 자식들에게도늘 할아버지의 공적을 항시 들려주며 기억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혼란한 시국 속에서 김씨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역사 교육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증조할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였어”라고 말을 해도 그 위대함과 숭고함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3·1 운동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어 더욱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덧붙여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했다. 김씨는 “실질적으로 많은 국가 유공자들 중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이다”라고 밝혔다.
김씨는 “다른 유공자들도 국가를 위해 애썼지만 국가의 부름 없이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열사들을 제대로 추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김시형 씨는 조부의 뜻을 이어받아 6년째 새마을지도자옥천군협의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군민을 위해 많은 회원들과 함께 다양한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김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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