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모범운전 외길인생…무사고 기록한 교통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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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모범운전 외길인생…무사고 기록한 교통의 산증인
  • 천성남기자
  • 승인 2016.03.03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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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운전자 김선욱(79·안남면 출신) 옹
모범택시운전자 김선욱(79 · 안남면) 옹

청주농고 2년 때 운전면허증 획득

안전운전은 교통법규를 준수하려는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운전대를 잡는 것은 쉽지만, 안전운전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어느덧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사람을 일컬어 ‘길 위의 무법자’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나이 19세였던 1956년, 청주 세광중을 졸업하고 청주농업고 2학년을 다닐 무렵 공부를 접고 그는 평생자격증인 운전면허증을 땄다.

“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참 운명 같아요. 당시 반 친구 부친께서 속리산화물차를 운영하고 계셨을 때였지요. 그 친구하고 요즘 흔히 말하는 ‘알바’를 뛰었어요. 속리산에서 나무를 싣고 오는 그 친구를 보고 나도 운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대전에서 면허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지요

 

 

 

 

 

 

한밭택시 취직했지만... 돈 뜯겨 귀향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전에 한밭택시가 운영되고 있었어요. 당장 그 곳에 이력서를 내고 취직을 했어요. 처음에는 돈이 잘 벌렸어요, 수입이 쏠쏠했지요. 그러나 복병(?)이 숨어 있었어요. 그것을 몰랐던 거죠. 낮 시간대에는 돈이 잘 벌리는데 저녁이 되면서 공포로 바뀌었어요. 당시 ‘대동 산 1번지’라는 우범지대가 있었어요, 그쪽으로 가는 손님을 모시고 갔다가는 그날 열심히 벌어놓은 돈을 몽땅 빼앗겼던 거예요. 산중턱이었는데 사람도 찾아볼 수 없고 하소연 할데도 없었고...결국 월급도 못 받고 그날그날 내야하는 사납금 8천원을 내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옥천 안남면으로 내려왔지요.”

옥천화물 운전기사로 재취업...또 좌절

“그래서 시작 한 일이 바로 ‘옥천화물’ 운전기사지요. 열심히 운전을 하면서 미래를 꿈꾸었지요. 고향이라 그런지 몸과 마음이 편안했어요. 운전하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1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어요. 그러나 또 한 번의 폭풍이 불어 닥쳤어요. 회사사정이 여의치 않아서였는지 결국 회사가 팔려버린 거였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그 때의 운전경력은 없어져 버린 거지요. 참 허망하더군요.”

당시 650만원 주고 개인택시 구입

“1980년,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소망하던 내 차를 사게 됐어요. 당시 650만원을 주고 개인택시를 산겁니다. 큰돈이었어요. 그때는 지금 또 다시 생각해도 내게 있어 운전은 운명 같은 거였어요. 당시 마을에서 아버지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물건은 잘 팔리는데 돈은 못 벌었어요. 동네장사이다 보니 외상값이 많이 깔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운전하며 번 돈으로 아버지의채무를 갚아나갔어요. 점차 갖고 있던 논밭까지 팔아 장사밑천에 썼지만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통에 회복하지 못했지요. 당시는 몰랐지먼 지금은 운전하며 효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전하고 돈벌며 늦장가로 행복 누려

“어머니는 5년 전에 작고하셨어요. 아버지 빚을 갚느라 6,7년 고생했어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군대 제대하고 돈을 벌다보니 결혼이 늦어졌어요. 30세 때 늦장가를 간 거지요. 지금 내 곁을 묵묵히 지키며 살림하고 1남 3녀를 낳아 아이들 잘 키워준 아내(신재분·75)가 무척 고맙지요. 아들은 현재 옥천중기의 공동대표로 살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생활도 운전을 잘해 기술병으로 빠져 운전병을 했어요. 그때 제가 모셨던 분이 별자리하나였던 장성급의 최창현 준장님이었지요. 훈련소 마치고 최전방인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 배치됐어요.

새벽 3시 참모장이 전화가 와 미리 떠날 때 알려달라는 부탁이었지요. 그러나 바로 불호령이 떨어지며 출발하는 바람에 연락하지 못해 지휘관들이 혼쭐이 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최근 돈벌이 힘들어 예년대비 수입 감소

“지금요? 손님이 많아서 줄지어 기다리며 택시를 타던 호시절은 다지나갔어요. 어차피 자가용이 많아져 그렇지요. 언뜻 듣기로는 그 대책으로 감차(개인택시수를 줄임)를 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얘기가 없어요.

택시가 가장 잘됐던 때는 지난 1981~1985년까지겠지요. 황금기였어요. 하루 순수익 10만원 올리기는 누워서 떡먹기였어요. 지금은 오전 8시~오후 5시까지 해도 7~8만원 벌기 힘들어요. 눈이 오면 또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전용차량 바퀴인 못이 박힌 타이어 없으면 운전하기 살벌하지요. 모범운전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 내게는 ‘인생의 훈장’ 같은 겁니다.”

교통부장관상 받는 것이 꿈
“모범운전의 비결이요? 정규속도를 꼭 지키는 일이지요. 고속도로에서는 100㎢이나 110㎢이고 국도에서는 60㎢ 이상은 절대 내지 않아요. 물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지켜야하지요. 자동차 연료소비도 60~80㎢로 가는 것이 가장 경제속도이지요.

이를 실천했더니 받은 메달 수도 상당해요, 10년 무사고, 15년 무사고, 20년 무사고, 25년 무사고, 30년 무사고 메달에다 군수상, 도지사상, 협회상 등등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꼭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한평생 고생하며 운전했으니 마지막으로 높은 분(교통부장관) 으로부터 표창한번 받는 것이지요. 시골에서는 자기들 밥그릇 챙기느라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없어요. 그 상장을 자손에게 보여주면 운전하며 잘 살았다는 표상이 될 것 같아서이지요.”

교통법규 지키는 것이 생명지킴이
“끝으로 모든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앞을 잘 살펴서 안전운전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지요. 택배 차들의 무법천지 운행을 지켜보노라면 어쩔 때는 오금이 저려올 때도 있어요. 사거리 교통사고 유발자들일 때가 있어요. 택시를 많이 이용해 주시는 고객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오지손님을 모실 때 짐이 많으면 노구라 빨리 옮겨드리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요.”

50년 냉수마찰이 건강한 인생 비결
60년 모범운전자로 살아온 그가 운전에 버금가는 더 자신 있는 건강 지키기 비결을 귀띔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인데 첫 번 째로 차가 서있을 때 30분 정도를 걷는 것, 두 번 째로 50년 동안 냉수 마찰 해온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의 비결이지요. 지금껏 병원 안가고 감기한번 걸린 적 없고요,”라고 강조하는 그는 역시 모범운전자이기 앞서 건강한 생활인임에 틀림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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