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용제의 물길을 옥천으로 되돌린 문화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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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용제의 물길을 옥천으로 되돌린 문화의 산증인
  • 천성남국장
  • 승인 2017.05.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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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근(76) 前옥천문화원장

“처음에는 난색을 표명했었지요. 장남 정구관(작고)씨가 옥천을 방문했을 때 지용제를 지용의 고향인 옥천에서 열게 하자는 간곡한 부탁을 몇 번이고 드렸어요. 그런 성과가 아닐까합니다.”

10,11,12,13대 옥천문화원장을 지낸 박효근(76·사진) 前옥천문화원장은 당시의 절절했던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용제 3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지용 시인의 문학을 흠모해왔던 지용회 문인들과 역대 지용문학상 수상자들, 옥천지역 각 기관 및 관계자들이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상경, 29회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을 축하하기 위한 장이 펼쳐졌다.

이들 지용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로부터 처음 지용제가 시작했던 역사를 지닌 세종문화회관에서 30세 생일을 다시 맞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닌 축제의 막이 올려졌다.

이날 누구보다도 감개무량했던 박 前원장은 언제부터인가 취재를 졸랐지만 언급하지 않았던 그날의 상념들을 하나둘 벗겨내며 막혔던 포문을 열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이 있지요. 그런 심정으로 서울에서 처음 열렸던 지용제를 지용의 고향인 옥천으로 모셔오는 결과가 되었지요. 그것이 지금 생각해도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용의 시를 사랑했던 문인(지용회)들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노구임에도 불구, 언제나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로 지역 문화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지적 제시해온 박 前원장은 “냉전시기의 이데올로기로 묶여있던 지용문학이 지난 1988년 3월 31일 해금(解禁)을 맞게 되자 지용을 사랑하는 문인들의 모임인 지용회가 결성돼 ‘1회 지용제’가 서울에서 열렸지요. 그 여세를 몰아 그 해 옥천에서 또 한 번의 1회 지용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일념이었고 또 하나의 감격이었지요.”

지용의 음력 생일인 15일을 기준으로 매년 문학행사를 개최해온 옥천의 지용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게 됐고 이제는 명실 공히 옥천지역의 브랜드이자 전국 문학축제로 인정받게 됐다.

“그럼요. 이제 ‘지용제’는 옥천의 대단한 자존심이자 자부심이 됐어요.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처음에는 고향에서도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었어요. 해금을 맞은 지용의 귀환을 반대하며 지역 보수단체 등에서 여간 핍박을 한 게 아니고, 심지어는 여타 기관장들에까지 괄시 아닌 괄시를 받았지요. 그런 세월 속에서 지용제 행사는 옥천문화원과 청년회의소에서 주관하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요.”

지난한 역사의 지용제는 파란만장한 30년 세월 속에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관심, 염려 속에서 무럭무럭 청년으로 성장해왔다.

박 前원장은 “어떤 일이고 기틀 마련이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많은 세월 속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당시 소년한국일보 김수남(작고) 대표와 한국일보 김성우(현재 지용회 고문) 논설위원이셨다”라며 “이 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 前원장은 “같은 해 지용회(이사장 정운영·지용장손 : 서울서 결성된 지용시를 사랑하는 문인회)가 남산에 시비를 세웠는데, 옥천에도 같은 시비를 세우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속리산 보은 인근계곡에서 물색하여 가져와 세운 것이 바로 지금 문화원에 있는 시비(한글대가 서희환 선생作·작고)이다”고 설명했다.

지용에 관한 한 다양한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박 前원장은 서울에서 문인들이 힘을 합쳐 ‘소월로’를 지명한데 착안해, 옥천 구읍에 ‘지용로’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1995년에는 경매로 넘어갈 뻔한 지용생가를 구하기 위해 송재주(4대) 前문화원장 등 문화원과 군, 각 기관과 단체들과 힘을 모아 생가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갖은 노력 끝에 2년 후 지용생가를 매입해 복원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 前원장은 1997년, 중국 연변에 ‘연변지용제’를 탄생시켰으며 연변지용문학상 제정은 물론 각종 문화행사를 진행하였고, 2009년에는 1회 북경 정지용 학술세미나를 연데 이어 지용문학관을 옥천의 명소로 발전시켜온 지역 문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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