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삶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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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삶의 무게
  • 김정자 수필가
  • 승인 2017.06.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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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

이제 내 나이가 어느덧 손주 자랑할 나이가 되었다. 간혹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휴대폰으로 손주들 자랑하기에 정신이 없다. 생명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고 사랑스러워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불현듯 결혼날짜가 다가오는 큰 녀석도 얼른 손주를 안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럽기도 했다. 나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 두 아들을 제왕절개 로 어렵게 얻었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겨 주었을 때 아픔보다는 뜨거운 감동과 놀라움이 마음에 일었다. 우리 부부를 꼭 닮은 아기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다니…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세상에 어떤 누구보다도 나보다 더 우리 아기를 보듬고 품어주어야 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비로소 엄마의 삶이 시작됨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나의 이름은 없어지고 누구 엄마로만 살았다. 남편과 자식의 뒷전에서 이름을 잊고 살아오면서 그 녀석을 군대에 보냈다. 입대 전날엔 잠까지 설치고 새벽이 밝아 왔다. 짧게 깎은 아들 녀석의 머리에서 갓 태어날 때 머리와 똑같다는 생각이 났다. 벌써 커서 군대를 간다니 입춘이 지났는데도 떠나지 못하는 한겨울의 늦추위보다 더한 미련이 흘렀다. 춘천 102 보충대에 아들 녀석이 입대하던 날, 그날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군악대가 입대 환영 행사를 하고 있다. 흥겹지 않은 흥겨움이 찬 공기 속에서 공전한다. 입대 장정들과 부모들에게 입대 소감을 한마디씩 해보란다. 자원해서 마이크 앞에선 사람들은 애써 참았던 아쉬움을 왈칵 서러움으로 쏟아냈다.

젊은이들이 곧장 강당 속으로 사라진다, 아들의 뒷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부모들의 습기 찬 시선이 자녀들의 뒤를 쫓는다. 이제 부모님들은 돌아가라는 스피커의 울림이 연병장에 울려 퍼진다. 애써 눈물을 감추는 부모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는다. 손수건을 꺼내든 어머니들의 애처로움이 겨울 찬 공기에 부딪힌다. 대학교 입학할 때 처음으로 집 떠나보낸 마음과는 달리 알싸함이 기다리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아들이 쓰던 방에 들어가서 녀석이 남기고 간 여운이 진한 그리움으로 배어들었다. 아들녀석이 아침에 엄마가 싸준 도시락의 따뜻함이 그립고 그 힘으로 지루하고 어려운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안부편지도 보내 왔다. 언제나 일에 쫓기고 성격까지 급한 내가 아들 녀석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와 결혼하고 손주 낳고 할 때까지 느긋하게 참고 기다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작은 녀석을 끌어안고 아들 몰래 속으로 백까지 세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 순간에 느꼈던 사랑의 기억이 나중에 이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가족이 인생의 어려운 난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이 나를 지탱하게 한 힘 중 하나였음을 깨닫는다.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고 그런 굴곡을 이겨 나가게 하는 통찰이 가족 관계 속에서 얻었던 경우가 많았다. 가족은 우리의 존재가 시작된 곳이고 그래서 인생의 긴 흐름에서 등을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삶이 힘들 때 서로를 일으켜 주고 에너지를 충전해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얼마 후면 또 한 가족이 생긴다. 하나둘씩 욕심을 내려놓고 새 가족 맞을 준비를 차근히 해야겠다.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긴장과 갈등의 많은 부분도 역할이라는 것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매여 생각하는 집착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역할에 집착하면 권위가 생기고 기대가 생기고 거기서 갈등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 관계 역시 결국 나를 비운 상태라야 참다운 관계가 가능해지리라 믿어본다.

이번 주말에는 큰 녀석이 예비 며느리하고 온다는 전화가 왔다. 반가움에 지금부터 마음이 바빠진다. 나하고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아들 녀석의 가족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생각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로 갔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식품이 그동안 가족을 지켜온 흔적으로 보였다. 앞으로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나 자신으로 깊이 들어가 급한 성격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손주를 안아볼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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