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해금 30주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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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해금 30주년을 맞으며∥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5.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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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숨겨져 있던 “심부름꾼” 정지용 해금의 선두 조력자-
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의 금서가 해금된 지 30년을 맞으며 그의 해금을 추진하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내 궁금하였다.
정지용 가족과 학계 그리고 일부 문학인들만이 해금 운동에 관여하였을 것인가? 예를 들어 독립운동도 해외와 국내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충북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 해금에 관하여 그의 고향 사람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을까?
아니었다.
그것은 기우였다. 궁금증의 실마리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일부 해소되었기에 이 글을 서술한다.

한국현대문학사의 획을 긋는 정지용의 고향 사람들이 이를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다. 고향 사람들도 무엇인가 해금에 일조하였을 것이라는 필자의 추측이 적중하였다.
한국문단사의 해금단계는 ⓐ1978년 3월 13일 조치, 월북 및 재북 작가 작품의 문학사적 연구를 순수학문의 차원에서 용인한다는 것 ⓑ1987년 10월 19일 조치, 순수학문의 차원에서 상업 출판의 수준으로 폭을 넓힌 조치로 ‘정지용 연구’라든지 월북 작가‘론(論)’의 상업적 출판의 길이 열리게 된 것 ⓒ1988년 3월 31일 조치, 정지용, 김기림의 작품 자체를 해금한 것 ⓓ1988년 7월 19일 조치, ‘월북문인의 해방이전 작품 공식 해금 조치’는 19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20여년의 문학사 공백을 40여년 만에 복원, ‘총체적 문학사’를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 등으로 통상적인 구분을 한다.

“스쳐가는 심부름꾼”이었다고 스스로를 겸손함으로 낮추는 충북 옥천군 김영만 군수는 1985년 당시 국책조정위원장 박준병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었다. 이후 그는 정지용의 해금관련 자료들과 맞닥뜨렸다. 평소 대통령 단임제, 광주문제 등 역사적 규명 그리고 사면복권 해금 등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학자풍의 의원으로 평가 받았던 박준병 그리고 지역의 선배들(조철호, 박효근, 안철호, 고 양무웅 등)과 지용회의 유자효 등이 정지용 해금에 분위기 조성을 하며 중앙에 의견전달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해금과 관련, 일정 선후를 가리는 부분에 좀 더 직·간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에 힘입어 정지용은 김기림과 함께 납·월북 문인 중에 선점을 작용 받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정지용 작품집 ‘납본필증’은 1988년 1월에 해금보다 먼저 이루어졌다. 이날 깊은샘은 『정지용 시와 산문』의 납본필증을 문공부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때 깊은샘의 기쁨과 환희는 차후 기회가 되면 다시 쓰기로 한다.) 이를 출판사는 “실질적 해금”이라고, 문공부는 “출판사실 확인”에 불과하다는 엇갈린 입장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며 정지용의 해금이 차분히 이루어졌고 정지용의 장남 정구관은 당시 박준병 의원과 김영만 보좌관에게 『정지용 시와 산문』을 증정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정지용 김기림의 해금이 이루어진 후 이 남은 「월북 작가 120여명 해방 전 작품 해금」(『일간스포츠』, 1988. 7. 20.)에서 “정한모 문공부 장관은 19일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민족문학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박태원, 이태준, 현덕, 백석, 임화, 이용악, 김남천 등 120명. 한국문학사 정립에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었던 월북 작가들의 8·15 해방 이전 문학작품을 공식적으로 출판·허용키로 하였다. 그러나 월북 작가 중 북의 공산체제 구축에 적극적으로 협력 활동하였거나 현재 현저한 활동 등을 함으로써 북한의 고위직을 역임한 홍명희, 이기영, 한설야, 조영출, 백인출 등에 대해서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지용 문학의 해금은 우리 문학사 복원작업을 위한 숨통을 텄다는 점과 청소년들이 애송할 수 있도록 교과서에 이들의 시가 실릴 수 있다는 점 등만으로도 큰 성과였었다.
정지용의 고향사람, 해금의 선두조력자. 메마른 정서와 자연친화적 삶의 부족 그리고 물질적 집착에 대한 치유를 바라며 정지용의 「고향」과 「향수」를 즐겨 부르는 “심부름꾼”은 정지용 모티프를 적용하여 지역문화통합과 정지용문학의 세계화 방안 실천을 위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해금과 관련된 이야기를 혹시 필자가 미처 듣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여 또는 들었어도 기억해내지 못하여 다 서술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연유로 정지용 해금과 관련, 수고해 주신 분께 서운함을 자아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지용 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그의 문학과 고향에 관련된 전반적인 범위뿐만 아니라, 해금과 관련 공헌한 바 크지만 “심부름꾼”이라고 겸손해 마지않는 또 다른 숨은 공로자를 찾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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