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벽을 허물어트리다
상태바
종교의 벽을 허물어트리다
  • 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 승인 2018.10.04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성웅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볍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서 김수환 추기경이 추천한 말이다.
비움의 삶을 몸소 실천한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가지지 않음으로써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던 법정스님은 누구보다 앞장서 무소유의 사랑 그리고 나눔을 실천했다고 했다.

내면으로 심화되지 못한 종교 열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파괴력을 가질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종교의 잣대로 재려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여러 종교가  번창하고 있는데 그 종교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 자비의 실천이 모든 신앙인의 일차적인 사명이고 또 종교를 갖는 이유입니다.

1993년1월 새해벽두 법정은 한 언론사 기자를 만나 이렇게 밝혔다. 길상사를 창건하며 법정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만남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법정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종교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종교 그 자체의 의미를 찾아 왔었다. 1970년대 초반 ‘그리스 찬 아카데미’에서 만난 여러 타 종교인들이 그들이었고 법정은 그들을 만나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하는 불제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법정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다시 강조했다. 그런데 종교가 일단 조직된 힘을 가지면 배타성과 집단이기주의가 생겨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지기 쉽습니다. 각 종교는 늘 이점을 스스로 경계하고 신앙인들은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종교인의 바른 현실 참여입니다. 종교인의 뜨거운 신앙은 내면으로 심화돼야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내면으로 심화 되지못한 종교 열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심도 있게 짚어낸 대목이라 하겠다.

앞서 말 한대로 길상사 개원식 때 김수환 추기경이 찾아와 축사를 했다. 법정은 그에 대한 답례로 이듬해 명동성당 축성 100돌 기념초청강연에서 특별강론을 하기도 했다. 또 법정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평화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했다. 스님은 기고문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한 생명의 시작일 뿐만아니라 낡은 것으로부터 벗어남’ 이라며 우리가 당면한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움터야한다고 설파했고 메시지 중간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끝에 아멘이라고 쓰기도 했다. 법정이 넓고 큰 마음을 가진 불제자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발언을 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법정의 크고 넓은 마음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법정은1998년 2월24일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자 1.800 여명 앞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한 종교인의 자세 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을 열어 무소유의 정신으로 당시의 I M F 경제 난국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2000년 4월28일 봉헌된 길상사 마당에는 관음보살상이 선을 보였다. 그런데 관음 보살상을 제작한 조각가의 이력이 독특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인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에게 관음보살상의 제작을 맡겼던 것이다. 훗날 조각가 최종태 씨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말했다.

그냥하고 싶었지. 그전부터 법당의 불상이며 관음상을 열심히 봐 왔어요 그러면서 나도 관음상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법정스님이 해 달라고 한거여. 기분이 좋았지. 그래서 하루 만에 다 했어요…내가 추구하는 맑고 깨끗한 소녀상의 이미지가 성모상하고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거라. 지금도 마찬 가지지요. 관음 보살상을 만들면서 보니까. 길상사에도 맑고 향기롭게 라고 써 놓았더군요. 법정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그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오늘 왜 절에 가는가 왜 교회에 가는가 냉엄하게 스스로 물어서 의지를 갖고 가야 자신의 삶이 개선된다. 절에 사는 스님과 신도들은 저마다 삶이 맑고 향기로운가. 그렇게 개선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한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