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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사 산방서 탄생한 대하소설 ‘고구려’정수인 작가, 외항기관사서 역사가, 소설가로 변신
‘고구려 바로 세우기’ 운동, 뮤지컬 ‘여우’ 극작가
도복희기자 | 승인 2018.10.11 16:32
정수인 작가.

정수인(62) 작가는 해양대학 졸업 후 외항기관사가 되어 세계 곳곳을 둘러보다가 고구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삼국을 축소 통일한 신라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우리 민족의 삼국시대를 그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십 수 년을 천착.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 연변으로 이주한다.

그곳 연변대학에서 5년 동안 고구려 관련 중국 자료를 읽고 수집한다. 1998년 고대사 공부와 소설 준비를 마치고 귀국해 옥천 가산사 산방에서 ‘고구려’란 대하소설을 집필. 2001년 초고 탈고 후 다시 숱한 퇴고를 거쳐 원고지 7천 매가 넘는 대하역사소설 『오국지』(전5권)를 완성한다. 연변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모택동 vs 구새통』, 소설집 『탈북 여대생』 등을 쓰기도 한다.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 뒷길로 200여미터 걸어가면 8평정도 되는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바람소리 가득한 곳이다. 화분 몇 개가 가을빛에 꽃을 피워내고 있는 곳에서 정 작가는 대하소설을 집필했고, 또 다른 작품을 쓰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군산수산전문학교(현 군산대학교) 기관과를 졸업하고 외항선 엔지니어로 세계를 돌던 그가 이곳 옥천으로 이주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말이다.

한때는 인도네시아에서 정착하고자 했으나 옥천으로 오기 전 연변에서 5년을 살았다. 연변의 겨울은 길다. 그는 “많이 다녀보니 세상 어디를 가도 신기할 것이 없었다”며 “놀다 지쳐서 연변에 있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기 1990년 여름부터 어린 관창의 목을 베어 신라군영으로 보낸 계백 장군의 행위에 대한 기존학계의 평가와 해석에 의문을 품고, 연변으로 이주해 자료를 모으고 역사소설 ‘고구려’를 쓰면서 작가로 나서게 된 것.

연고 없는 옥천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 건 그의 형 지승스님이 가산사 주지로 부임하면서였다. 가산사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8평 규모의 작은 작업실은 5년 전 그가 손수 지어 지금은 그곳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정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꼴찌를 도맡아 하면서 무협지만 읽었다고 했다. 그는 명작을 거의 읽어 본 적이 없고 문학수업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문학은 문장이 아니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국문과를 갈 일이 없었고, 만약 역사학과에 갔더라면 역사소설 ‘고구려’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존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

그는 고구려와 수·당에 대한 KBS역사스페셜의 황당한 역사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고구려바로세우기’라는 작은 책자를 힘닿는 대로 만들어 무료배포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우리 겨레와 더불어 살았던 도깨비와 여우들이 놀랄 새도 없이 박제되어 동화책 속으로 갇혀 버린 것이 안타까워 뮤지컬이 뭔지도 모르는 채 뮤지컬 ‘여우’ 대본을 쓰기도 했다. 안내면 답양리 가산사 뒤편, 작가의 산방에서 다음에 쓰여질 또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도복희기자  okhs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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