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인생길 대금이 있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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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인생길 대금이 있어 ‘행복’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12.20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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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과 함께 고향 찾은 운산 권영배
악기 교육·재능기부로 지역민과 호흡
운산 권영배 대금산조 이수자.

독좌관심은 홀로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이렇게 조용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옥천을 다시 찾은 사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귀촌인이면서 귀향인이다. 옥천에서 태어나 증약초와 옥천중학교(24회)를 졸업했으니 말이다. 오래 고향을 떠났던 그는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석탄리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대금을 불고 붓글씨를 쓴다. 운산 권영배(60) 대금산조 이수자가 바로 장본인이다. 그는 이지당이 있는 이백리에서 태어났다. 3남1녀 중 막내인 그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옥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대략 4살 정도로 기억함) 산에서 고요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28세 되던 해 텔레비전에서 그 소리의 정체가 대금소리였다는 것을 깨닫고 대금을 접하기 시작한다. 대전에서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기업홍보물 영상제작을 겸한 웨딩샵과 웨딩 이벤트를 36세까지 하다 IMF 때 사업을 접는다.

그 후 대금 소리와 재료인 쌍골죽을 채취하기 위해 전국을 6년 동안 돌아다닌다. 사업을 접은 후 대금을 불면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38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금에 입문, 지금껏 대금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오게 된 것. 서울에서 안정된 사업을 찾으면서 대금과 함께 서예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지금까지 서예와 대금을 가까이 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현재는 이생강류 대금산조, 원장현류 대금산조 이수자로 귀향해 소리와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서울 인사동과 한국미술관, 경복궁, 중국과 일본 등에서 서예전시회를 해왔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공연을 해오고 있다.

권영배 씨는 “대금은 우리 고유문화의 소리로 한이 서려 있다”며 “늘 내 몸의 일부 같이 지니고 다녀 언제 어느 때고 소리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 내려온 만큼 ‘소리’로 지역민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전하며  “예전에는 구음으로만 배워 힘들었는데 지금은  악보가 있어서 소리만 낼 수 있다면 조금은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대금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수양을 할 수 있다”며 그는 대금을 꺼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차실에 홀로 앉아 어느 때고 대금을 불고 붓글씨를 쓰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권영배 대금이수자의 연주가 대청호 물빛 따라 흘러 다녔다.

현재 그는 청산 신매리에서 대금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지역 행사에서 대금 연주로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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