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중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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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중견
  • 박하현 시인·시집 감포등대
  • 승인 2019.01.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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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현 시인·시집 감포등대

몇 개월 됐어요, 몇 살이에요, 몇 년 생인가요, 나이가 몇이세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같은 내용의 이 많은 질문들은 영아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세대 간의 분류를 담고 있다. 아가와 어린이, 청소년과 청년, 중년과 노년을 가르는 질문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의 시간 비율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일까 청년 이후 세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라고들 한다.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했던 청년기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글쎄 그렇기까지 할까 싶었다. 그런데 일정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생각은 잘못 된 것이었다. 누가 물을까 겁나기도 하고 물으면 우물우물 답을 못하겠는 거였다. 얼마나 젊은데 잘 살아가려고 얼마나 애쓰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속다짐을 해도 그만 약해지고 마는 대략 난감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어느 날 찾아온 난감한 지경은 이렇다. 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예술지원공모사업이 국가적으로 또 지방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 즈음 내가 속한 지역에서는 지난 몇 년 간의 개인 실적과 창작품, 몇 가지 서류를 더 필요로 하는데 특이한 사항이 있었다. 바로 연령을 나눠 참여하게 한 것,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첨부하도록 한 것이다. 청년예술인(39세 이하), 중견예술인(만 40세~65세 미만), 원로예술인(만 65세 이상) 등 세 그룹으로 나눠 지원을 받는다. 예술 세계의 ‘중견’은 존경받는 분들의 또 다른 호칭이기에 당혹스러웠다.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해 놓았다. ‘어떤 단체나 사회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 또는 지위와 규모는 그다지 높거나 크지 아니하나 중심적 역할을 하거나 확실한 업적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 확인하고 나니 더 부담스럽고 중압감이 밀려왔다. 더구나 은퇴 후 등단하는 작가가 늘어나는 추세에 곧장 중견예술인에 포함돼야 하는 그들 또한 난감한 일이지 싶다.

중견예술인의 난감한 상황은 생활 속에서도 이어진다. 몇 년째 청소년시설에서 운영하는 건강체형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해 운동을 해오고 있다. 음악에 맞춘 춤 동작으로 체형 관리와 근육운동을 하는데 젊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또래로 보이는 분들이 오면 동창생 만난 듯 반갑고 의지가 되어 좋은데 몇 개월 지나다 보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한 쪽 어깨로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동작이나 빠른 회전 부분이 버거운 것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어지럽기도 하고 어깨 근육이 뭉쳐 여러 날 고생하기도 해서 그 시간에는 동작을 멈추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기를 기다리곤 한다. 안 그래도 동작이 외워지지 않아 틀리기 일쑤여서 뒷사람에게 미안한데 이런 시간이 또 고역이다. 언니 오늘은 잘 따라하네요 하는 다음날은 여지없이 앓아누울 지경이 된다. 그렇다고 운동을 포기하기엔 젊은 마음이 용납하지 않으니 운동화 끈을 조일 수밖에... 가정에서도 동네에서도 애매한 중견예술인이 여기 또 있다. 새로 이사 온 분들과 식사모임을 하는데 어쩌다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빠 언니 즐비한 막내가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니, 그렇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만고의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말을 해도 탈, 안 해도 탈, 팩폭- 팩트(사실)를 얘기하면 폭력이다-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조어까지 나오고 보면 더욱 그래야겠다 마음먹게 된다. 그런데 그 다짐과는 다르게 줄줄 말하고 있는 자신과 마주치게 될 때 비애가 밀려온다. 우리 다음세대에 관해서나 교육 이야기에 그렇게 되는데 실은 뭘 알아서도 아니고, 자녀를 잘 키워서도 아닌 좀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이렇게 변명하는 자체가 나이 탓이라 하겠지만...

자식들이 저에 대해 이러고저러고 얘기하고, 부모들은 그러고 그랬구나 이해하고 격려하면 좋으련만 어른의 조언보다 친구의 경험을 더 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시대이다. 하긴 나도 그 시절 부모님과 상의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대해 터놓지 않았었다. 무슨 능력자라고 머리 터져라 혼자 고민하고 꺼이꺼이 혼자 울며 단독 결정하는 가장 이기적인 때였다. 이 기억은 고딕 붉은 줄을 쳐야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인생에서 완고함으로 치달으려는 위기의 때에 등판시켜야 할 구원투수 격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견이 되었지만 이마저 고마운 일, 주어진 자리에 차렷하기로 한다.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이 사회에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고 확실한 업적을 올리게 될 그날을 향해 미래형 중견들이여 아무쪼록 퐈이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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