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비과’를 찾아서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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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비과’를 찾아서 Ⅱ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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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은 건설출판사에서 하숙(기거)을 하였어요. 아마 1945-1946년 이화여대에 근무하던 때 일거예요. 당시 건설출판사를 하였던 조벽암(1908-1985)이 (조성호 선생님의)큰아버지예요. 우리 아버지 조중협(1918-2010)은 조벽암의 동생인데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1945년 남쪽으로 내려와요. 후에 (아버지 조중협은)백운초등학교 등에서 교장을 지냈지요. 지용문학상을 받은 오탁번이 아버지(조중협)의 제자예요.
(왜 아버님은 바로 교사의 길을 걷지 않으시고요?)
그런데, 아마, 큰아버지 조벽암이 출판사 일을 같이 하자고 꼬셨겠지.(웃음)
하여튼 이때부터 아버지는 건설출판사 일을 하게 되었어요. 건설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 아버지는 정지용을 만나게 되었지요.
건설출판사 2층에 정지용의 방(집필실)을 따로 하나 주었어요. 그런데 밤새 정지용이 글을 썼어요. 다음날 식모(가사 도우미)가 (그 방에) 들어가 치우면서 투덜, 투덜거렸다고 해요.
아버지가 들으니까 식모가 투덜거리더라는 거였지요. 그것도 그럴 것이…. 방안이 온통 원고지를 구겨서 버린 파지와 ‘비과’를 까먹고 버린 빠시락 비닐이 널려있었으니….
(아버님으로부터 언제 그러한(정지용 관련)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늘상 얘기 했지. 모여 앉으면. 건설출판사 얘기할 때.
그때 건설출판사에 서정주뿐만 아니라 여류작가 박화성(1904-1988), (정지용 휘문고보 제자였던)오장환(1918-1951) 등 굵직한 작가들도 많이 드나들었어요.

1946년 전후 정지용은 이화여전 교수, 시집의 재발행 등으로 매우 분주하였다. 당시 아버지 조중협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조성호 선생님은 이렇게 회상하신다.
물론 이러한 구술 채록은 기억에 의존하는 바가 커서 사실과 혼동되거나 변이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정지용의 전기적인 연구와 견주어 보아도 조 선생님의 정지용에 대한 ‘하숙집과 비과’에 대한 구술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당시 소사읍에서 서울 이화여대까지 출퇴근 거리가 만만치 않았을 것 ⓑ1946년에 『정지용 시집』 재판과 『지용시선』 그리고 『백록담』을 재판한 것 ⓒ이러한 서적의 재판과 시선을 선정하는 것은 정지용 자신에게도 숨 막히게 바쁘게 진행되었을 것 ⓓ아울러 출판사 관계자나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도 만만치 않게 분주하였을 것 ⓔ1946년, 정지용은 44세, 조중협은 28세였기에 조중협은 그때 일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 ⓕ조 선생님은 1942년 생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들어 기억하기 용이하였을 것 등은 기억의 퍼즐이 잘 들어맞는 부분이다. 조 선생님으로부터 인터뷰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기억을 더듬어 미처 일러주지 못한 부분을 말씀하신다.

1946년에 건설출판사에서 재판을 발행한 『정지용 시집』의 표지화, 그것이 당초무늬…. 당초무늬 표지화를 이주홍이 그렸지요. 아버지는 이 시절 원고도 받으러 다니시고….
또 지용은 행복하다고. (정지용이)먹던 비과에도 관심을 갖는 후학이 있으니…. 자신은 1942년(지난 호에 1941년 생으로 오기) 생이라고.
사소한 만남도 글로 쓰니 예쁘다고….

하지만 조 선생님과의 구술 채록은 사소한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 이는 아주 중요한 정지용 연구과정의 일환이다. 하마터면 영영 놓치고 말았을 정지용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성호 선생님께 고마움 전한다. 손사래 치지 않으시고 흔쾌히 미소로 맞이하여 주셔서. 그리고 촘촘히 말씀해 주셔서.
문화콘텐츠의 발전을 둘러싼 기술적 환경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웨어-아트웨어로 바뀌고 있다. 옥천군도 이러한 방향으로 콘텐츠 개발 방향을 설정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이 샛길로 접어들었다. 빛나고 ‘더 좋은 옥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되어, 잠시 딱딱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지용이 하숙집에서 밤새 원고를 정리하며 먹었던 ‘비과’. 그것은 연한 갈색의 손가락 2마디만한 크기로 여느 사탕과 비슷한 맛이었다.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비과’와 같은 주전부리.
정지용의 「향수」에 감흥을 일으키듯 ‘비과’를 맛이나 재미로 혹은 심심풀이로 사람들마다 입에 넣고 그것을 그리워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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