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운동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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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운동간다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19.01.3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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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아파서 병원간다’는 말은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피곤해서 운동간다’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초과근무를 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자. 이때 피곤해서 운동하러 간다니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피곤해서 운동하러 못 간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실제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출근이나 퇴근 후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사실은 ‘피곤해서 운동간다’는 말이 옳다. 즉 피곤하니까 운동을 하러 가야 한다. 직장의 사무실 업무로부터 느끼게 되는 피로와 신체적인 운동을 해서 나타나는 피로현상은 그 원인부터 전혀 다르다. 직장을 마치면서 느끼는 피로감은 업무 중 정신적인 긴장과 더불어 주로 한 자세를 장시간 유지하는데 따른 근긴장과 순환장애로부터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또 피로감의 성격도 매일 매일 일상을 반복하면서 만성화되고 누적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운동을 할 때 나타나는 피로감의 원인은 완전히 다르다. 에너지원의 일시적인 고갈, 대사산물의 일시적인 축적, 근육의 미세구조에 가해지는 부하와 미세손상, 반복적인 신경자극의 전달과 그로 인한 신경연결부위에서 신경전달물질 재흡수 지연 등이 운동을 할 때 피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운동 시의 피로감은 일회적 현상으로 운동량과 빈도가 적절히 조절되면 그 피로가 누적되지 않으며, 또 피로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이 개선되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중량을 반복해서 드는 운동을 통해 피로를 유발시키면 일시적으로 근육의 미세구조에 균열이 일어나는데, 이 균열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근육은 더욱 강해지고 더 무거운 중량을 들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일시적으로 혈압이 상승하지만 동시에 혈관내피세포로부터 생성된 산화질소(NO)의 혈관확장작용이 일어나 운동 후에는 한동안 혈압이 낮아진다. 이러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혈압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혈관내피세포의 성장을 돕는 물질의 생성을 촉진하여서 혈관을 보다 건강하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일상생활로부터 초래되는 피로감이 반복되는 채로 방치되면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즉 피로하므로 직장에서 돌아와 바로 눕게 되고, 그로 인해 인체 전반의 신진대사 수준이 떨어진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근골계가 약화 되며 내장지방이 증가하면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고 더 심한 피로와 무기력증의 수렁에 빠져들어 간다. 말 그대로 피로가 피로를 부르는 악순환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결국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운동은 심지어 암환자의 치료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인 피로감을 이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암 자체와 암 치료와 관련되어 나타나며 암환자의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이러한 피로증세를 ‘암 관련피로(CRF: cancer-related fatigue)’라고 한다. 암 관련피로(CRF)는 매우 심각하고 만성적이며 휴식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으며 신체활동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암 관련피로는 신체적으로 비활동적인 상태가 될수록 피로가 악화되는 악순환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을 피로의 ‘자기지속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사이클이 진행되는 과정은 만성피로증후군을 일으키는 과정 하고도 닮아있는데 결국 인체 면역기능의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신체적인 운동은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 이후 호주, 미국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온 암환자의 치료과정에 운동프로그램을 적용한 연구들은 암환자에게 치료를 시작하기 전 암 치료의 부작용인 암 관련 피로(CRF)와 관련된 운동 정보를 사전에 제공할 때 암 관련 피로가 현저히 감소하며, 치료의 효과도 높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꼭 기억하자. 피곤해서 운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니까 운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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