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 지나치는 게 가장 힘들다
상태바
가난한 자 지나치는 게 가장 힘들다
  • 도복희기자
  • 승인 2019.04.25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네방네 삶는 족족’ 임성빈 대표
‘동네방네 삶는 족족’ 임성빈 대표가 향수식자재마트 내 분점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세상에 살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겪었기에 가난한 친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는 임성빈(동네방네삶는족족·49) 대표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신문배달 일을 했다. 신문 돌리는 일은 그가 군대 가기 전까지 이어졌다. 몇 십리를 걸어 신문을 넣다 보면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도 있었다고. 담장 높은 집 앞, 커다란 개가 무서워 빙 돌아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임 대표는 스무 살 때 아내 김계월(49) 씨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제대 후 아내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옥천에 경향신문과 대전일보 지국을 내고 지국장을 맡게 된다. 1994년 그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다. 지국에 신문 배달하는 친구들이 7명 있었다. 어릴 적부터 신문 돌리는 일로 돈벌이를 해야 하는 환경에서 살았던 그는 같은 처지에 있던 아이들을 부모처럼 돌봤다.

그때 당시 고등학생으로 지국에서 일했던 문화광고마을 정민우 대표는 “임 대표님은 지국장이라기보다 형이고 부모 같았다”며 “월급보다 더 많이 고기를 사주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 대신 임 대표님이 쫓아다니며 해결해줬다. 그는 내 인생에 고마운 존재고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며 살아갈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준 분”이라고 회고했다.

임 대표는 지금도 배달하던 동생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번은 배달 일을 하는 한 친구가 다리를 다쳐 근 한 달 동안 학교까지 통학을 시켜주기도 했다고. 1998년 우여곡절 끝에 경향신문 지국이 폐쇄되고 한국일보 지국을 인수한다. 당시 한국일보 지국을 인수하면서 부수는 떨어지고 지대는 계속 올라가는 상황으로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2000년 계룡시 동아일보 지국에서 일하게 된다. 그에게 신문은 생계였다. 6년 전 배달 일을 도와주며 돼지족발 삶는 기술을 배운다. 기술을 습득한 후 임 대표는 동생 용빈 씨와 함께 ‘동네방네 삶는 족족’이란 상호를 내걸고 옥천읍 금장로 110-20번지에 본점을 내고 다시 얼마 전 향수식자재마트 내 상가에 분점을 내기에 이른다.

임성빈 대표는 “가난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대를 물리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쉽게 가난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대로 지나치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다”고 했다.

임 대표는 일 년에 500만 원 정도 음식을 영실애육원에 6년째 후원하고 있다. 1년 전부터는 삼청리 별뜰에도 음식을 후원한다. 이뿐 아니라 옥천군 장애인자활자립지원센터에도 2년간 정기적 후원을 해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