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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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거짓말
  • 권예자 수필가
  • 승인 2019.05.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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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자 수필가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옛집과 가족이 그리워 요양원을 몰래 빠져나온 환자들이 벤치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자신이 왜 그곳에 앉아 있는지를 잊어버릴 즈음 다정한 말 한마디가 노인의 마음을 다독인다. “할머니, 버스가 많이 늦네요. 저하고 커피 한잔하실래요?” 그녀의 착한 거짓말에 속아 환자는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간다.      

독일의 뒤셀도르프 지역, 노인요양시설 근처에 설치된 가짜 버스정류장 이야기다. 치매를 앓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많단다. 더구나 같은 곳에 오랫동안 갇혀 사는 환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심해서, 틈만 나면 거처를 빠져나와 실종되기 예사여서 생각 끝에 운영한 것이 가짜 버스정류장이란다.

별 효과가 없을 듯하지만, 이 가짜 버스정류장 덕분에 실제로 치매 노인들이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급격히 줄었고, 요양시설의 직원과 경찰들의 수고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해서 얼마 전부터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생겨나고 있단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위안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쩌면 희미하던 가족의 얼굴도 떠올랐을 것이다. 비록 잠시 후에는 자신이 그곳에 앉아 있는 이유조차 잊어버리고 말지라도….

고모의 시어머님께서 치매를 앓으셨다. 나는 고모에게서 자랐기 때문에 사부인의 그런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어른이 치매로 고생하는 3년 여 동안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회갑을 갓 넘긴 어느 날 외출하셨다가 집과는 다른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신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로 자꾸 집을 나가서 길을 잃으니 가족 중 누군가는 꼭 곁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더욱 힘든 것은 반년도 안 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유일하게 알아보는 것은 내 고모인 큰며느리뿐이었고, 아들도 몰라보고 너희 집에 가라면서 발로 걷어차곤 하셨다. 가장 어려운 일은 생리의 뒤처리와 외출을 못 하게 막는 일이었는데 가족이 적어서 그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회용 기저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에 관련된 병원도 없었던 때다.  무명천도 귀해서, 헌 광목으로 두툼한 기저귀를 여러 개 만들어 두세 겹으로 채워드리고 삶아 빨곤 했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배설물을 처리할 때면 우리는 코를 막고 돌아섰고, 고모는 억, 억, 구역질을 하면서 갈아드렸다.

자꾸 배가 고프다고 식사를 남보다 많이 하시니 배설물도 엄청 많았다. 그때마다 고모는 그 기저귀들을 가지고 근처 대동천에 가서 깨끗이 빨아 양은대야에 삶고는 하셨다. 냄새도 지독하지만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빨래를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무장갑도 없던 맨손이었다. 냇물은 쉽게 얼었지만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오물을 실어 나를 정도는 되었다. 나중에는 이웃이 일러준 대로 소주를 마시고 하셨다. 소주 한 잔에 얼큰히 취해서 역한 냄새도 잊고, 추위도 다스리며 정신없이 기저귀 빨래를 하신 것이다.

밤에는 가족이 잠든 사이에 밖으로 나가실까 봐 7m 길이의 끈으로 할머니와 며느리의 손목을 연결하고 잤다.

할머니는 밤에도 그 끈을 끌며 아래 윗방을 돌아다녔는데, 잠결에 할머니의 차디찬 손이 내 얼굴을 더듬다가 빨리 일어나라며 뺨을 때리던 기억에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그런 어른이 자주하는 일은 당신이 믿는 신에게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첫 구절을 시작하면 사촌동생과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장난스럽게 다음 구절을 같이 읊으며 두 손을 모은 채 뒤따라다니곤 했다. 동네 아이들도 우리 뒤를 따랐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죄송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천지신명 일월성신 하위[合意] 동심(同心) 하옵시며
화해(和解) 동심(同心) 하시옵고.
징용 간 우리 아들
무탈하게 도우소서. 무탈하게 보내소서.

징용으로 작은아들을 빼앗기고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으면 병환으로 큰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오래된 기원이 레코드판처럼 토시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처럼 지극한 어머니의 기원도 헛되어, 작은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할머니도 발병한 지 4년 만에 먼 길을 떠나셨다. 눈을 감으시던 날 저녁, 마지막 기저귀를 빼내고 몸을 닦아드리면서 고모는 울고 또 우시다가 혼절하셨다.

당시 고모 내외분은 여러 번 효자, 효부상도 받았지만, 고모는 그때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소주를 마시고 우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건 우리 시어머님이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할머니가 막무가내로 밖으로 나서려 할 때면 고모는, “어머니, 지금 도련님이 기차 타고 집에 오신대요. 단장하고 기다리셔야죠.”하며 머리를 빗겨드리곤 했다.

가짜 버스정류장에서 노선 없는 버스를 기다리는 환자나, 돌아오지 못할 아들의 기억을 놓지 못하는 노인들, 그런 어른들께 우리가 해드려야 할 일은 어쩌면 착한 거짓말뿐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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