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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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78)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08.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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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지당에 비 뿌리고

윤 3월 그믐께, 조헌은 박로(朴輅), 전승업(全承業) 등 문인들과 함께 옥천의 서정천(西亭川) 하류에서 노닐고 있었다. 서정천 하류라고 하면 지금의 이지당(二止堂) 아래 하천이 아닐까 싶다. 각신서당(覺新書堂)이 있던 곳이기도 한 그곳에서 그는 평소 그곳의 경치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이러한 연유를 알고 있는 송시열은 훗날 그곳 암벽에 ‘중봉선생유상지소(重峯先生遊賞之所)’라고 친필로 음각을 해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조헌은 그 자리에서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왜국 사신을 목 베어 명나라에 아룀으로써 뒷날의 책망을 면하고자 했으나 조정 신하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했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반드시 유구(琉球)의 고변(告變)이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 화가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 제군은 이런 때에 어찌 피를 찍어 상소함으로써 임금을 깨닫게 하지 못하는가”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조헌의 대표적인 시조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더라’

비 오는 날의 한가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서정시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연못가에 사공없는 빈 배, 안개 속에 숨은 듯 희미하게 비치는 버드나무, 해질 무렵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의 풍경이 평화스럽다. 그는 이 시조를 통해서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당시의 불안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안일한 조정의 태도를 바라보며 조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심정을 이 시에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안개 속에 가려진 듯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어두운 나라의 운명, 후줄근히 비에 젖은 버드나무에서 느껴지는 백성들의 고통이며 부지런히 노 저어 갈 배는 갈 곳을 잃어 물가에 매여 있고 한가로이 나는 무심한 갈매기의 정경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태평하기만 한 조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 시의 배경과 시기는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혹자는 고향인 김포의 한강 변에 있는 대감 바위라고도 추정하는데 단순히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을 읊은 서정시로 본다면 김포 고향에서 보낸 한 때의 작품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혼탁한 정세를 여기에 담았다면 또 다른 추정이 가능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해에 조헌이 대둔산에서 한 달여를 머물고 있었다. 그는 글 읽는 일을 일과로 삼지 않고 날마다 산곡(山谷)이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먼 곳을 조망하며 풀잎을 뜯어 물에 흘려보냈다. 그것은 근심을 달래고 슬픔을 달래 보자는 것이요 그곳의 경치를 즐기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이 헤어지면 스스로 얽어서 신었고 중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늘 말을 할 때에는 “쯧쯧”하는 소리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밥을 먹다가도 수저를 놓고 탄식하는 소리를 하니 중들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네 사람의 중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그가 먼저 두어 술을 뜨더니 나머지 밥을 4명의 중들에게 밀어주면서 “내년에는 반드시 왜란이 있을 것이고 나는 응당 의병을 일으켜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인즉, 오늘 이 밥을 같이 먹는 자는 내가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으면 곧 나에게로 와서 일을 같이 도모하자”라고 하였다. 이에 중들은 그의 말을 괴이하게 여기면서도 건성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응낙했다. 

이듬해 임진년에 과연 변란의 소식이 들리니 중들은 놀라고 감탄하면서 앞을 다투어 의(義)를 쫓는데 4명 가운데 한 명은 이미 죽었고 한 명은 발에 병이 나서 걷지 못하고 나머지는 조헌 선생과 함께 싸우다 죽었다. 

그 후 1596년에 안방준이 사자산(獅子山)에 갔을 때 발에 병이 나서 의병에 나가지 못했던 중을 만났다. 안방준은 그가 나에게 대둔산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들려주었고 조헌 선생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며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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