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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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67)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8.1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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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는 게 내 마음도 편하고 또한 S의 입장을 배려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S의 손에 돈을 쥐여주자 그녀는 눈물을 보이며 “교수님,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이 돈 만은 제가 월급에서 조금씩 푼돈으로라도 갚아 나가겠습니다.” 하기에 그럴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정말 두 번째 돈은 수년에 걸쳐 소액으로 갚아나갔다. 그러면서 S는 가끔 내게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교수님 은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교수님을 위한 기도를 매일 하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NMC와 성신여대가 통폐합해서 성신으로 갈 때도 특별히 S를 당시 이사장에게 이야기하여 성신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세월이 지나 얼마 전 S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장님 덕분에 저도 어느새 성신에서 정년퇴직하고 연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딸은 독일에 유학 갔고, 아들은 대학 재학 중 군대 갔어요. 그리고 언제나 학장님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시며 기도하시던 친정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가셨어요.”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그 어린애들이 다들 커서 성인이 되었고 그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세월 속에서 이제 정년퇴직을 했다니…. 그녀는 빠짐없이 “다 학장님 덕분이에요.” 하는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바보같이 산 내 삶이 다소라도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생긴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생긴 슬픈 일이 내 슬픔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생긴 어려움이 내 어려움으로 공감되는 것은 겸손과 유순함, 배려와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격려와 위로가 태어나는 곳이라고 믿고 싶다.

학장님, 사람을 너무 믿지 마세요

NMC 간호대학은 동대문시장과 가깝고 환자들이 드나드는 국립의료원과 같은 경내여서 상인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큰 양푼을 머리에 이고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꿀단지가 대여섯개 들어있는 양푼을 무겁게 머리에 이고 서서 꿀 좀 팔아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 무거운 꿀을 힘들게 내려놓는 할머니가 가여웠다. 한 병에 얼마냐고 물으니 4만 원이라고 했다. 나는 얼른 한 병 달라고 하며 돈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그 양푼을 다시 힘겹게 머리에 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꿀 한 병 팔면 얼마를 번다고 저 무거운 양푼을 머리에 이고서 이리저리 반가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한 교수가 들어오더니 “학장님, 또 꿀 사셨어요? 그렇게 사는 꿀은 거의 다 가짜에요. 학장님이 사신 꿀도 틀림없이 진짜 꿀 아닐 거예요. 이제 그런 사람들 말 좀 그만 믿으세요.” 했다. 나를 위해서 진정으로 안타까움에서 하는 말인 것을 잘 아는 나는 그 교수에게 말했다. “내가 진짜 꿀을 먹으려고 그 꿀을 산 것은 아니에요. 그 할머니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한 병 샀으니 그 꿀이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때요? 커피에 설탕을 타 먹기도 하는데 가짜 꿀이라 해봤자 설탕을 좀 섞은 것 아니겠어요? 나는 애초에 진짜 꿀을 사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에 속은 것이 없어요.”

또 한 번은 한 아주머니가 산 더덕을 사라면서 노크했다. 지친 얼굴에 힘겨운 표정으로 눈빛은 이미 내게 사정을 하는 듯했다. 얼른 팔고 집에 가서 애들 밥을 해줘야 한다며 꼭 좀 팔아달라고 매달렸다. 산더덕이라며 꽤 비싼 가격을 불렀다. 어쨌든 나는 1kg을 달라고 해서 역시 그 아주머니 더덕 짐꾸러미를 줄여주었다. 연신 고맙다고 하며 내 방을 나갔다. 행인이 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는 비서가 달려와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또 장사가 학장님 방으로 직접 들어갔나 보다.”며 요즘에 진짜 산더덕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살펴보니까 내가 산 것은 산더덕이 아니고 잔대라는 것이었다. 그에 덧붙여 학장님은 너무 사람을 믿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꼭 산더덕 먹으려고 찾아서 산 것이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잔대면 먹을 수 있는 건데 무엇이 문제냐? 못 먹을 것을 속여 판 것도 아닌데….” 했더니 웃으며 소리 없이 방을 나갔다. 

또 어느 날 비서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나가 보았더니 머리가 하얀 노신사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만나겠다고 하고, 비서는 안 된다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나에게 무슨 일로 오셨냐고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잰걸음으로 들어와서 소파에 앉으셨다. 그때 마침 동대문운동장에서 한일 야구시합이 있던 무렵이었는데, 자기는 일본야구단 단장으로 온 사람인데, “오늘 워커힐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동대문운동장으로 오던 도중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을 잃어버렸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사방에 다닐 데가 많은데 택시비도 없어서 고민하다 못해 국립의료원 원장실이나 학장실에 들러 사정을 해보려고 이렇게 염치없게 오게 되었다. 그러니 돈을 좀 빌려주시면 내일은 제가 꼭 갚아드리겠다.”는 말을 일본어 반 우리말 반 섞어가며 사정했다. 나는 점잖은 노신사가 이렇게까지 내 방에 찾아와 사정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주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필요하시냐고 물었더니 내일 100달러를 드릴 테니 100달러 환율로 12만 원만 달라고 했다. 핸드백을 열어보니 마침 12만 원이 있어서 몽땅 줄 수는 없어 비상금 2만 원을 남기고 10만 원을 드리면서 “오늘 일 잘 보세요.” 하고 보내드렸다.

할아버지가 내 방을 나가고, 교수들과 직원들이 떠들썩한 소리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주셨어요?” 한 교수가 물었다. “한 푼도 안 줬어요.” 하고 나는 시치미를 뗐다. 모두 내 말을 믿지 않고 얼마를 주었냐고 계속 묻기에 어쩔 수 없이 “2만 원 줬어요.”라고 했다. 그래도 믿지 않고 계속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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